[쿠키뉴스] 인세현 기자=가상의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극적으로 범인을 쫓는 형사들…. JTBC 금토극 ‘괴물’은 전형적인 한국 범죄 스릴러 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어둠이 깔린 갈대밭에서 시신을 발견하는 첫 장면만 보면 남은 이야기가 흐를 행로도 뻔해 보인다. 성격도 성향도 각기 다른 경찰 두 명이 고군분투 끝에 잔혹하고 지능적인 방법으로 살인하는 범인을 찾아 검거하고, 20년 전 사건의 비밀까지 파헤친다. 물론 두 형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날 것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괴물’은 일반적인 추적 스릴러와 다른 길을 간다. 범인을 잡아야 할 주인공 이동식(신하균)은 수상하기 그지없고, 파트너인 한주원(여진구) 또한 그를 의심한다. 의심스러운 인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모두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봐온 덕분에 서로에게 비밀이 없어 보이는 만양 사람들은 저마다 감추는 것들이 있다. 시청자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의뭉스러운 얼굴들을 관찰한다. 작품은 자연스럽게 시청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괴물은 누구인가. 너인가. 나인가. 우리인가’
답은 빠르게 등장한다. 후반에 가서야 드러날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은 극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을 때 밝혀진다. 그는 형제이고 이웃인 줄 알았던 ‘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기고 극 중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드라마는 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람 생명 빼앗는 놈들한테 이해, 동기, 서사 같은 걸 붙여주면 안 된다”는 오지화(김신록)의 대사로 선을 긋는다. 시청자는 그제야 괴물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전부가 아님을 안다.
의심했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핀다. 이제 고통이 보인다. 20년 전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그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어머니나 동생이 돌아올까 봐 동네를 떠나지도 못한다. ‘괴물’은 남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와 유가족, 주변인의 죄책감을 그려낸다. 이동식은 쌍둥이 동생 이유연(문주연)이 사라진 후 당시 용의 선상에 올라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라 괴물을 자처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괴물’은 20년 전 이유연에게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하나하나 밝히며 우리의 이기를 마주 본다. 지역 유지와 사업가, 경찰은 자신의 죄를 덮고 지역개발을 도모하기 위해 20년 전 사건을 은폐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개발을 앞두고 또다시 그때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은 사건을 묻기 위해 필사적이다. 사람들은 개발의 걸림돌인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재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괴물’은 매우 흔한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섬세하게 요리한다. 사건을 자극적으로 조명하는대신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하고 공감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은 나중의 문제다. 숱한 범죄 수사극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자세다. 완성도 높은 대본과 감각적인 연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제 몫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작품을 더욱 빛낸다. 남은 2회를 기대하는 이유다.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