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실천시민행동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 50개 단체가 모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단체는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즉각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라”며 “을미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은 똑같은 항일무장투쟁인데 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만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하느냐. 형평성과 공정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서훈의 정당성과 타당성은 이미 확보됐다”면서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는 전봉준 등의 서훈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질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윤경로 전 한성대학교 총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인물인 전봉준 장군께서 공주 우금치전투에 참여해 진두지휘했는데 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의병운동 이후 2차 동학농민혁명이 일본에 대한 반제·반침략 투쟁이라는 것은 명확히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박용규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도 “역사의 지체가 너무 심하다”며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를 회복하라는 법률이 지난 2004년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보훈처는 해당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동학 세력이 주축이 돼 일으킨 대규모의 민란이다.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동학농민혁명은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에서 동학군은 탐관오리의 폭정에 저항, 궐기했다.
2차는 달랐다. 당시 일본군은 1차 혁명 진압을 돕겠다며 조선에 주둔해 내정간섭을 벌였다. 동학군은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취지에서 2차 혁명을 일으켰다. 최시형과 전봉준 등이 주축이 돼 관군·일본군에 저항했다. 치열하게 싸웠으나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일본군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군에 의해 총살·사살·화형당한 순국자는 111명으로 전해졌다. 2차 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을 포함해 단 1명도 서훈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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