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연일 ‘중대재해’가 발생하면서 법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을 줄이기 위한 법 취지와 달리 실질적인 예방효과가 나오지 못할 거라는 우려와 함께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게다가 기업들이 예방에 집중하기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외부 컨설팅에 집중하면서 법 시행에 실질적 이익은 법률 컨설팅을 맡은 로펌들에게만 가지 않겠느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연이어 사망 사고가 발행했다. 최근 한 달 사이 사망사고는 최소 4건에 이른다.
지난 11일 광주 서구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공사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6명이 매몰됐다. 19일에는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삼호중공업에서 탱크 바닥 작업을 위해 하부로 내려가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고, 20일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작업하던 협력업체 직원이 장입차와 충돌해 사망했다. 24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서 노동자가 크레인 오작동으로 사망하는 사고까지 나왔다. 최근 발생한 산업재해 사고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였다면 법적 구성요건상 ‘중대재해’ 처벌 사유에 해당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24일 ‘전국 기관장 회의’를 개최해 법 시행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안경덕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유해·위험요인을 묵인·방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기업들은 노동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발생 시 당장 경영자 처벌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법 시행에 앞서 안전조직 강화 및 사업장 이중 점검 등으로 강력한 안전대책을 마련했지만, 최근 여러 곳에 인명사고가 나면서 누구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에도 기업들은 안전대책을 강구해왔다”며, “그럼에도 산업재해를 100% 막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업종별로 사업 형태 및 구조가 다양해 일괄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충분한 안전대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상당히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또 기업들은 예방보다 처벌 피하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중대재해 발생을 막고, 실질적인 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한 차원의 법 제도 시행에도 당장 처벌은 두려워 법률 자문을 통해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고 있다. 대다수 기업은 법 시행 앞서 로펌들에게 자문 컨설팅을 받았고, 향후 중대재해 발생 시 대응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는 내부 계획을 세웠다.
익명을 요구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안 나길 바라면서 기업들도 이중, 삼중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사고는 발생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되면 당장 처벌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업들이 위축돼 있는 건 사실”이고 말했다. 또 “얼마나 실질적인 예방효과가 있을지모르겠다. 처벌이 무서워 기업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국가적인 손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생각은 안 하고 아직도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갈 궁리에 몰두한다는 지적이다. 또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없다면 기업들이 과연 안전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재계나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이 모호하다느니 처벌 위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느니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데 처벌이 강력하게 돼야 기업들은 예방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최근 발생한 중대재해들도 아직 중대재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 못 한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을 그대로 노출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또 산업현장에서 2인1조 작업이 정착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면서 “위험한 작업에 대한 기준이나 판단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며, “기업들은 아직도 안전의 문제를 비용적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취지에 동의하지만, 법 기술적으로 제도가 완벽하지 않고, 재정·인력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응조치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완입법 또는 노동정책으로 현실적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이상국 숭실대 안전환경융학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실제 산업현장서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작동될지는 아직 미지수”라며 “법 하나 만들었다고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은 적고, 이보다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와 현장 지도 감독이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실제로 얼마나 산업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법 시행 후 조속한 현장 점검을 통해 입법보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과정에서 일부 논의되긴 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시설이나 안전관리에 대한 지원대책은 법 조항으로 마련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정책적으로라도 예산을 정부가 마련해 지원하는 활동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에게는 막연한 불안감보다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가 잘 취해질 수 있도록 잘 들여다보길 권고했다.
심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들이 잘 작동되도록 살펴보고 점검하라는 차원이기 때문에 이를 잘 지킨다면 처벌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로펌들로부터 컨설팅을 받는다는 사실을 막연히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안전을 위해 기업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치 등을 안내받고 실천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