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K-배터리사의 가격경쟁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내연기관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제조원가 절감이 절실한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러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 광물업체와 장기 수급 계약을 체결한 국내 배터리사들의 수급에는 당장 차질이 없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몇 달이 이상 지속하면 배터리 제조 원가에 대한 부담은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2일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고조로 인해 17일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니켈 가격은 1톤당 2만4150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서 공급 차질이 빚어졌고, 이날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니켈 가격은 지난달에 비해 약 11% 이상 올랐고, 향후에도 상승 가능성이 크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러시아에 대한 무역 제재가 현실화되면 니켈 공급 차질이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니켈·알루미늄 등은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삼원계 배터리 주원료다. 국내 배터리사들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호주 등 다른 지역에서 원자재를 공급받기 때문에 현재까지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 또 안정적인 배터리 생산을 위해 지난해부터 공격적으로 광물업체, 배터리 소재 업체들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원재료 가격 급등에 대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호주 광물 제련 기업 QPM의 지분 7.5%를 인수해 10년간 니켈 7000톤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달에는 호주 라이온타운, 독일 벌칸에너지와 각각 리튬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온은 계열사 공급망을 적극 활용하고, 중국 EVE에너지와 공동투자해 양극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세웠다. 또 LG엔솔·SK온·삼성SDI 배터리 3사 모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광물 가격이 오르면서 원자재에 따른 수급 리스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광물업체와 장기 계약 등을 맺어 현재 배터리 원자재 수급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계속될 경우에는 국내 배터리업체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직접 러시아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지 않더라도 글로벌 광물시장의 연쇄 효과에 따라 배터리 제조 원가 자체가 상승하고, 이는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제조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업체에서는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우크라이나 문제가 계속된다면 연쇄 효과에 따라 니켈, 알루미늄 등 글로벌 배터리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오를 것”이라며 “니켈·알루미늄 등을 제외하더라도 거의 모든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터리 제조 원가를 낮춰 내연기관차와 경쟁해야 하는 배터리사들의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큰 부담이고, 이를 전기차 가격에 모두 전가하는 것도 어렵다”며 “또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가속화되면서 배터리사들의 고심은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배터리 원자재 가격은 당분간 고가 유지 전망도 나온다. 과거에는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 생산업체에서 공급량을 늘려 적정 시장 가격이 유지됐으나, 최근에는 업체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에너지·광물 생산업자들이 가격이 증가한다고 해서 공급을 즉각 늘리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공급량 감소 이외에도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차 수요가 늘자 배터리 원자재 업체들이 공급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어 “결국 안정적인 원자재 수급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원 개발에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나 공기업은 직접 자원 개발 주체로 나서지 말고, 민간 기업들이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