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폭 늘려주면 좋죠. 그렇지만, 무작정 늘려 달라고는 못 하겠어요.”
2일 오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 주유소에서 만난 40대 직장인은 최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기름값이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한 번 주유할 때 가득 채우거나 5만원씩 했는데 이제는 너무 비싸서 3만원씩만 넣고 있다”면서 “가격이 더 오른다고 하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에서 안양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50대 직장인은 “지난해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줘 도움을 받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다시 유가가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암담하다”며 “유가가 올라서 정유사들의 마진이 꽤 높아졌다고 들었는데 이를 낮춰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유류세를 20% 깎아준 걸로 아는데 인하 폭을 조금 더 늘려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화물차와 택시 등 영업용 차량 운전자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출퇴근용 차량은 대중교통으로 대체 이용할 수 있지만,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은 생계를 위해 유류비 지출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주유소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영업용 차량은 생계가 달렸기 때문에 유류비를 줄일 수가 없다”며 “지난해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해줘서 도움을 받았는데 다시 1700원대를 넘어가니 부담이 크다. 1500원 후반대만 유지해줘도 그나마 살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판매자 입장에서도 치솟는 기름값은 달갑지만 않다. 기름값이 오르니 소비자들이 유류비를 줄이면서 일부 주유소에서는 오히려 매출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택가에 가까운 주유소들은 주로 출퇴근용 차량이 주로 주유를 하는데 기름값이 크게 오르자 소비자들이 전보다 더 기름을 적게 넣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0년째 안양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판매자는 “1600원 후반대까지만 하더라도 판매량이 늘었는데 1700원대를 넘기면서 객단가(고객 1인당의 평균 매입액) 자체가 낮아졌다”며 “가격이 비싸니 5만원 넣던 소비자들도 더 적게 넣기 시작하고, 결국 우리 같은 영세 주유소들은 매출이 줄어든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66.20원으로 집계됐다. 전날보다 2.88원 오른 가격으로 올해 초 1622원을 기록한 이후 6주 연속 상승했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지역은 아직 리터당 1700원 중반대 휘발유 가격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종로, 용산 등 일부 서울 지역에서는 일반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긴 곳도 여럿 있었다.
이처럼 국내 기름값이 크게 뛰는 이유는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석유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산유국들이 증산을 억제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석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져 유가 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 넣는 기름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유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주요 석유 소비국 모임인 국제에너지기구, IEA 31개 회원국들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비축유 6000만 배럴 방출에 합의했지만, 이미 치솟은 유가가 갑자기 낮아질 가능성은 적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해외경제 포커스 자료를 통해 “겨울철 후 난방 수요가 줄어들면 석유의 수급불균형이 완화하겠지만, 투자 감소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 유가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유류세 20% 인하 조치로 효과를 톡톡히 본 정부는 유류세 인하 연장 카드를 꺼낼 태세다. 아직 본격적인 유류세 인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제유가 등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속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초 1800원대를 넘던 국내 휘발유 가격은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인해 9주 연속 내림세를 유지했고, 올해 1월 초까지 1620원 수준까지 낮아졌다. 현재도 유류세 인하 조치가 적용된 상태지만 국제유가가 그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체감 효과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 필요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국제유가 변동 등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조기에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류세 인하 폭 확대에 대해서는 “유류세 20% 인하 조치는 역대 최대 인하 폭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