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이 창립 54년 만에 지주사 전환에 성공했지만, 정치권 외풍에 따라 지주사 본사 소재지를 번복하면서 출범 첫해부터 순탄치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선 이후 더욱 거세질 외풍에 대한 최정우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의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2023년 3월까지 본사 소재지를 서울에서 경북 포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애초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 계획에 따라 본사 소재를 서울에 두기로 했지만, 포항제철소가 있는 포항지역 여론이 악화되면서 한 달여만에 결정을 번복했다.
포스코홀딩스가 본사 소재지를 서울로 정하자 포항지역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포항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포스코 본사 이전을 촉구했고, 연이어 정치권에서도 포스코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노동계를 대표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여러 차례 대선 TV토론회에서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놨고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등 유력 대선후보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연일 비판이 나오자 포스코는 입장을 바꿔 본사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은 이강덕 포항시장과 만나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 본원 이전을 위한 합의서를 작성했고, 내년 3월까지 이전을 마치기로 했다.
포스코가 정치권 외풍에 취약한 까닭은 기업 탄생과 관련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9월 민영화 전까지 정부가 지분을 가진 공기업이었다. 민영화 이후에도 압도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대주주가 없어 전문경영인의 임기제로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또 포스코는 철강제품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 자동차, 조선, 전자, 기계, 건설 등 주요 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국가기간산업으로 분류돼 있다. 여러모로 정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영화 이후 포스코 회장 중 임기를 모두 채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임 이후 정권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퇴임한 경우가 태반이다. 자진사퇴 이유는 다양하지만 업계는 사실상 정권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회장직을 수행한 이구택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로 바뀌고 1년 후 자진 사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 취임한 권오준 회장도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중도 퇴임했다.
지주사 출범부터 외풍에 휘둘리자 최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포스코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인데 본사 소재지마저 자유롭게 정하지 못하면서 향후 추진코자 하는 사업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대선 이후에는 외풍이 더 거세게 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거취가 달라질 수 있다고도 봤다.
정계 한 관계자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지난해 최정우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고, 사상 최대 실적을 냈기 때문에 당장 사임할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그럼에도 정권이 바뀌고, 다른 진영 사람으로 판단한다면 정권 차원에 무언의 압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포스코에 대한 정치권의 외압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은 지양돼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국가기간산업 특성상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민영화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외풍을 걱정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 등 대변혁의 시기를 맞은 만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시작은 공기업이었고,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특성도 고려돼야 한다”며 “직접적인 경영권 개입은 없어야 하지만, 이번 포항으로의 본사 이전 결정은 지방분권 차원에서도 맞는 결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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