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떼고 '신사업' 탑재한 중후장대...'제조업' 탈피

'중공업' 떼고 '신사업' 탑재한 중후장대...'제조업' 탈피

두산重→두산에너빌리티, 현대중공업지주→HD현대 사명 교체
지난해에도 친환경 열풍...화학사들, 사명서 ‘화학’ 빼
전문가 “업종 명시 사명, 과거 효용성 컸으나 이젠 걸림돌”

기사승인 2022-03-06 06:30:02
각사

주총 시즌에 앞서 중후장대 기업들이 잇따라 간판을 교체하면서 미래 신사업 전환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제조업 기업이란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고 4차 산업혁명 등 대전환 시기에 맞춰 사업 다각화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후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두산그룹이 최근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측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현재 해당 사명에 대한 상표 및 도메인 출원을 마친 상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사명 교체 작업에 착수했고 조만간 공식 발표를 내놓을 걸로 관측했다.

사명에 ‘중공업’이란 단어를 썼던 현대중공업그룹도 최근 간판 교체 작업에 착수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고,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오는 28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중공업 부문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던 핵심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크다. 그럼에도 상징적인 ‘중공업’을 사명에서 제외한 것은 제조업 중심에 치우친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고, 유연한 사업 역량을 갖추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새 사명 HD현대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사명 변경은 제조업 중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투자 지주회사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번을 계기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도 친환경 바람을 타고 화학사 사이에 사명 변경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중립 요구와 함께 ESG 경영이 주목되면서 화학사들이 잇따라 사명에서 ‘화학’을 뗐다. SK종합화학은 지난해 9월 1일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으로 교체하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을 선포했다. 또 한화종합화학은 바로 닷새 후인 6일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바꾸고 기술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2022에서 미국 빅데이터 기업인 팔란티어와 상호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전통적 제조업에서 스마트 기업으로 진화하기 위한 협력 사례로 평가된다. 샴 샹카 팔란티어 최고운영책임자(왼쪽)와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오른쪽)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현대중공업그룹 

사명 변경에는 상표 출원부터 상호 등기, 각종 문서 변경 등 번거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또 많게는 수십 억원에 달하는 비용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사명을 교체하는 이유는 들이는 비용보다 얻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항시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서 도약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기업이 사명 변경에 나선 이유는 최근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나 지향점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자체적으로도 환기하는 차원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사명 변경으로 얻게 되는 긍정 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면 보통 기업들은 사명 변경에 나선다”며 “소액주주 포함해 많은 투자를 유치하는 긍정적 효과도 일부 있다”고 부연했다.

학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사명 변경 열풍에 대해 사업간 경계 붕괴 현상에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일명 빅블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이 기존에 없던 영역으로 신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사명 변경 작업에 착수했다는 해석이다. 

또 타업종과의 이종 결합에도 적극 나서기 위한 차원이다. 또 전문가들은 대전환 시기에 사명 변경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걸로 봤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혼동되는 사례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종 간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사명에 ‘중공업’ ‘화학’ 등을 포함시켜 업종 경계를 명확히 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효용성이 발휘됐다면 이제는 오히려 사업 확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가 촉발한 디지털 대전환에 따라 산업지형이 크게 요동치는 가운데 기업들은 지주사 전환, 사명 변경 등 기업 변화의 최적 시기로 판단한 걸로 보인다”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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