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줄어 법 시행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 달간 발생한 중대재해만 35건에 달한다. 해빙기에는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감소 효과를 논하기에 다소 이르다는 평가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한 달간 산업재해로 인해 숨진 노동자는 42명(35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명이 줄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일부 기업들이 약 2주간 자발적 임시 휴업에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산업재해가 줄었다고 하기엔 무리다.
재계와 노동계는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는 이유에 대해서 법 제도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있다. 양측이 제시하는 근거는 달랐지만,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에서는 공감했고,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했다.
재계는 법 시행 이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해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왔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예방보다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오히려 산재 예방 효과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어느 수준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해야만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면서 난색을 표했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입장에서는 누가, 무엇을, 어느 정도 이행해야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알기 어려운 혼란에 처해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과도한 처벌수준과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조차도 처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의 안전 확보 차원이라고 하지만, 법 시행 이후 요구하는 서류가 몇 배 이상 늘었다”며 “사고가 안 나게 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으니 이게 맞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다수 기업은 적지 않은 비용을 중대재해 처벌 회피 명목으로 쓰고 있다. 한 산업재해 전문가는 “상당수 기업이 중대재해 처벌 회피를 위해 대형로펌에 법률 컨설팅을 맡겼고, 일부는 그에 따라 조직 개편을 완료한 걸로 안다”며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준수가 핵심임에도 대형로펌의 컨설팅은 산업재해 예방조치보다는 처벌 면피 차원에 그치고 있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노동계도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는 이유에 대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불완전성을 언급했다. 애초 현장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한 취지로 추진됐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 과정에서 많이 후퇴했고, 결국 부족한 입법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 80%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함에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적용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며 “진정 중대재해를 줄이고자 한다면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법 과정에서 사고원인을 찾기 위한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빠지면서 사실상 기업들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내준 측면이 있다”며 “이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 공포 후 시행 전까지 1년간 기간이 있었음에도 기업들은 안전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고, 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법에 대한 비판만을 내쏟기보다는 일단 현행법을 최대한 준수한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상국 숭실대 교수는 “악법도 법이다”며 “여러 부분에 있어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일단 지켜나가면서 개선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소비적인 논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의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