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시민들의 삶부터 위협하고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이 침수·화재·감전 등 재난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오후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로 불리는 취약주거 현황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가 모여 머리를 맞댔다.
전국에서 지옥고에 거주하는 가구 규모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분석한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옥고 거주가구는 2010년 69만5735가구에서 2016년 81만1520가구, 2020년 85만5553가구로 늘었다.
특히 주택 이외의 거처 가구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주택이외의 거처 가구는 2010년 12만9058가구에서 2015년 39만3792가구로 2배 이상 증가한 뒤 2020년 46만2630가구를 기록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최근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과 같이 가시적인 빈곤층 공간은 감소하고 있지만 고시원, 숙박업소 객실 등 비가시적인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민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피해가 발생한 지하 주거는 서울이 전국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수는 전국 31만523가구, 서울 19만4172가구로 집계됐다.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지옥고 주거 형태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비정상거처 완전해소’를 내세워 △임대보증금 무이자 대출 △이사비 바우처 제공 등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선 ‘비정상거처 가구에 대한 이주지원 강화’로 공약이 축소 반영됐다.
지난달 9일 침수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서울시가 발표한 ‘반지하 대책’이 제대로 된 증거기반을 배제한 ‘잘못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 소장은 “서울시와 SH공사는 지하거주 인구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잘못된 대책을 발표했다”며 “인구주택총조사 20% 표본자료 분석결과를 보면 2021년 건축법 개정 이후 건설된 지하거주 가구는 서울시 보도자료 상의 4만호가 아니라 8485가구”라고 비판했다.
이에 정부가 주거취약계층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이강훈 변호사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이 취약계층 뿐만 아니라 집값 폭등과 높은 전월세로 고통받는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방안”이라며 △공공택지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50% 이상 확대 △재개발·재건축 사업시 공공임대 공급 의무비율 상향 △질 좋은 통합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을 제시했다.
주거급여 제도 개선 필요성도 나왔다. 월 임대료만 반영하는 현행 제도에서 벗어나 ‘관리비’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한다는 목소리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정책분과장은 “열악한 거처는 노후한 주택으로서 광열 수도비 중 난방비를 필요로 한다. 습기제거, 충분한 환기를 위해 충분한 난방이 전제돼야한다”며 “광열수도비에 대한 계측을 주거급여에서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