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청년은 꽃도 못 피우고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얼마전 추석 때 힘들다고 하면서 일을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형이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며 생업을 유지했습니다. 형수와 조카 2명 다 몸상태가 안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걱정입니다”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들 유가족의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다. 이번 화재로 참사를 당한 사망자들은 아울렛 하청·용역업체 소속 직원들로 시설관리와 쓰레기 처리, 환경미화 등을 담당했다. 백화점 개장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업무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오전 11시께 찾은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사고 현장은 전날 발생한 참사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화재로 인해 건물 곳곳엔 검은 그을음이 서렸다. 아울렛 건물 외벽의 3분의 1 이상이 검게 변해 있었다. 지상층 외벽도 일부 소실됐다. 화재가 일어난지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화재 당시 불길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했다.
임시 휴업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현대 아울렛 곳곳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대전경찰청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현장에 대한 1차 합동감식에 들어갔다.
김항수 대전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지하 1층 하역장 앞에 주차된 1톤 화물차는 뼈대만 남았다. 불이 처음 목격된 지하 1층 하역장소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중적으로 감식했다”며 “화재 원인과 발화 지점 등은 아직 확인 못했다. 감식을 더 진행해봐야 알 것”이라고 밝혔다. 1차 현장감식 결과 불이 난 지하 1층 주차장은 모두 타버리면서 남은 게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후 1시 이후 재개한 시작한 2차 감식에서는 이번 화재사고로 숨진 유족 3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숨진 가족이 빠져나오지 못한 원인 등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감식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주차장에서는 유족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사고의 장본인인 현대백화점 그룹과 정부 지자체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번 사고로 조카를 떠나보낸 A씨(34)의 작은아버지 채 모씨는 “왜 최신식 소방시스템이 대형 화재로 이어졌고, 지하에서 물리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시간적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시청과 경찰, 소방당국 관계자들은 직분을 빙자해 공권력으로 방해하며 모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현대백화점을 향해서도 “본사 관계자는 가족들을 통제만 하다 이제서야 장례 절차를 상의하러 왔다”며 “유가족들에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고 병원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사망자 B씨의 유족 이 모씨(남·62)도 “대전 유성구청에 오전 8시 반에 갔더니 분향소를 꾸려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전시나 유성구청장, 정부 중앙부처 아무도 신경을 안써주더라”며 “유족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 떠들썩하게 보도만 하면서 하나도 수습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런 무지막지한 대처가 어딨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형의 장례를 그룹장으로 해달라는 게 우선 요구사항”이라며 “당국의 늑장 대응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유족들을 보듬어달라”고 호소했다.
회사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전날에 이어 화재사고 현장을 다시 찾았다. 그는 “이번 사고로 희생되신 고인분들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7명의 사망자들 가운데 일부는 장례절차를 진행 중이며, 나머지 유족들도 장례절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화재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직접적인 화재 원인이 아울렛 내부 문제로 판명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고로 사망자가 나올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현재 대전노동청은 감독관과 조사관을 파견하는 등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유무를 검토하고 있다. 만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면 유통업계에서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