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 MZ 모은다…파격 변신하는 백화점

‘가치소비’ MZ 모은다…파격 변신하는 백화점

중고 전문관 이어 백화점 1층까지 선점
고물가 속 가성비·트렌드 갖춰 젊은층 인기

기사승인 2022-10-07 07:36:39
‘마켓인유’ 매장 모습. 현대백화점 
‘럭셔리’의 대명사로 꼽히는 백화점이 ‘중고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고가 명품 판매에만 공을 들이던 백화점의 파격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 중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젊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친환경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중고 시장에 대한 백화점 인식도 많이 변했다고 강조한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중고시장, 왜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신촌점 유플렉스 4층 전체(244평 규모)를 중고품 전문관으로 리뉴얼해 선보였다. 대표 브랜드로는 세컨드핸드(중고품) 의류 플랫폼 브랜드 ‘마켓인유’, 중고 명품 플랫폼 ‘미벤트’, 친환경 빈티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리그리지’, 럭셔리 빈티지 워치 편집 브랜드 ‘서울워치’ 등이다.

특히 마켓인유는 최근 판교점과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팝업 행사에서 80% 이상의 MZ 고객들을 끌어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현대백화점은 같은달 미아점 1층에 중고명품 전문 브랜드 ‘럭스 어게인’을 오픈했다. 백화점의 얼굴이라 불리는 1층에 중고 매장이 문을 연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MZ세대 고객을 중심으로 가치소비가 확산하며 세컨핸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며 “나만의 가치를 중시하고 친환경 소비 트렌드가 늘어난 것도 중고 상품 인기의 배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화점이 단순 상품 판매 공간을 넘어 고객의 문화 트렌드를 제안하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신세계백화점 등을 포함해 이커머스 업체도 중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사모펀드와 함께 국내 최장수 중고 커뮤니티인 중고나라의 지분 93.9%를 인수했다. 롯데쇼핑이 SI(전략적 투자자)로 나선 만큼 중고 거래 플랫폼과의 본격적인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지난 1월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에 82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자로는 신한금융그룹·미래에셋캐피탈 등이 있다.

신세계 계열사인 SSG닷컴은 번개장터를 입점시켜 리셀(되팔기) 상품이나 중고 명품을 판매 중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리셀 시장이 확대되면서 SSG닷컴의 중고 명품 매출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220%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층 사이에선 중고 거래가 가성비를 겸비한 득템은 물론 친환경을 추구하는 가치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를 애용한다는 한 소비자 이 모씨(여·34)는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가성비가 뛰어난 중고 제품을 많이 찾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보다 더 독특하고 매력적인 중고 제품도 많다. 이전보다 중고 거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에 문을 연 중고품 전문관 '세컨드 부티크'를 찾은 고객들이 다양한 중고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계속되는 ‘MZ 모시기’ 경쟁

지난해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정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몸집을 키웠다면 올해는 고물가의 영향으로 중고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관련 시장이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지난해 24조원으로 6배가 늘었다.

이같은 중고 열풍은 글로벌 현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 대표 백화점인 노드스트롬, 메이시스 등에는 이미 중고 의류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월마트도 지난해부터 스레드업과 제휴해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중고 시장 거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코트라(KOTRA)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2020년 기준 175조원에 달했고, 일본 중고 시장은 올해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는 백화점 업계가 ‘MZ세대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중고 시장을 하나의 전략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추구하는 세대다. 명품 등에 관심이 많고 기성층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나 선호도가 매우 높다”면서 “백화점들은 소비층이 두터운 MZ세대를 확보하기 위해 중고거래 시장에 발을 들이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젊은 고객층이 지속적으로 유입이 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이어 “미국의 경우 중고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의 대표 백화점 니만마커스도 부도가 나는 등 전세계 백화점 산업의 지속 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라며 “기존의 고급화된 백화점의 이미지로만 살아남기는 힘들어졌다. 21세기 백화점은 힐링 공간을 제공하거나 MZ를 위한 차별화된 놀이터로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 백화점의 개념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일각의 카니발라이제이션(신제품이 기존 주력 제품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 우려와 관련해선 “MZ세대의 명품 선호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장 파이가 커지면서 중고와 신제품을 번갈아 사는 서로 간 시너지가 있을 거라고 본다”며 “이미 명품 수요가 고점을 넘어섰기 때문에 오히려 백화점 이용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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