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원인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첫 단추를 채운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권의 칼날을 피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4일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의결했다. 이로써 여야는 이날부터 45일 동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광범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참사가 서울시 관내에서 일어난 만큼 시를 비롯해 서울소방재난본부, 서울교통공사 등이 줄줄이 국정조사 대상으로 호출됐다. 야당 측은 시 재난 대응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오 시장을 겨냥해 검증의 칼날을 갈고 있다. 시에 따르면 25일 오전까지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들의 자료제출 요구 등은 공식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시 관계자들은 특위활동이 주말께에는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긴장한 기색이다. 국회 밖에서는 참사 희생자 유가족 일부의 법률대행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오 시장을 겨냥한 공세를 예고했다.
참사 발생 4주차가 됐지만 그동안 오 시장 책임론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참사 초기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연이은 책임회피성 언행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을 향한 비판의 칼날은 상대적으로 무디지 않았느냐는 게 시 안팎의 분석이다.
이와는 별도로 기민한 대응과 책임을 피하지 않는 태도, 발 빠른 사과가 국민정서에 부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참사 당시 오 시장은 하계올림픽유치 등을 명분으로 유럽을 순방 중이었다. 전대미문의 사고 발생시 재난대응총괄책임자의 공백상황은 쉽게 비판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오 시장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현지에서 이태원 참사 현황을 유선으로 보고받은 뒤 발 빠른 대처에 들어갔다. 시 정무라인 관계자는 "(보고를 받은지)오 시장이 5분 안에 결정했다. 바로 귀국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현지에서는 참사규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오 시장은 김의승 행정1부시장과 통화해 신속한 사고수습본부 설치와 총력지원을 당부하는 등 초기대응단계에서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 시장은 입국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낮은 자세로 일관했다. 사과의 릴레이였다. 참사 책임을 캐묻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도 "서울시도 이태원 인파 예측실패…모든 책임지겠다", "용산소방서장 책임은 수장인 시장에게", "무한한 책임감, 깊이 자책" 등의 발언이 줄이었다.
오 시장에게 대형 재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등 폭우피해로 얼룩졌던 2011년 여름. 재선으로 민선 5기 2년차를 맞은 오 시장은 수해대처에 미흡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시는 기록적인 폭우가 수해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항변했지만 예측 불가한 위험요소로 가득 찬 현대도시에서 이같은 해명은 곧 책임회피로 비쳐졌다. '오세이돈(오세훈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합성어)이란 유행어가 떠돌기도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책임을 지고 시장 직에서 스스로 내려온지 11년 만에 다시 마주한 대형 참사에서 오 시장 이 이전과 확연히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오 시장은 민선 4~5기 시절 '자기확신에 사로잡혀 정무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여권내부에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대응을 계기로 10년에 걸친 정치공백기, 오랜 야인생활을 거치면서 쌓은 내공을 재평가해야하는 분위기다. 2011년 수해대처 당시 시행착오가 경험치로 축적돼 발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는 시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오 시장을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경계하고 있는 야권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민주당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초기부터 살펴보면 지금까지 오 시장의 대응은 나름 현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국정조사를 통해 광범위한 조사가 펼쳐지면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소 내년 1월까지 예정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오 시장은 거부할 수 없는 검증대에 오른다. 과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증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까.
손대선 기자 sds110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