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1일 공개한 외교청서에 러시아와 분쟁 중인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 “러시아가 불법 점거했다”고 기술했다. 쿠릴 4개 섬이 불법 점거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외교청서에 적힌 것은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12일 NHK·닛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최근 국제 정세와 일본의 외교 활동 전반을 기록한 2023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올해 외교청서에는 “(북방영토는) 일본 고유의 영토지만 현재는 러시아에 불법 점거되고 있다”고 적혔다. 이러한 표현은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영토 분쟁을 해결한다는 방침 속에 나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러시아 제재 대열에 동참하면서 교섭이 장기간 정체될 것으로 예상되자 대응 태세를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청서에는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협상과 관련해 “전망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기술했다.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칼차카반도 사이에 펼쳐진 쿠릴열도 중 쿠나시르, 이투루프,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등 가장 남쪽에 있는 섬들이다. 현재는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이다.
외교청서에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에 대해 ‘불법점거’라고 기술한 것은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쓴 것은 2011년 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년 만에 ‘러시아 불법 점거’를 기술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그 해마다 발생한 다양한 외교적 사건을 종합해 고려한 뒤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 정부는 발끈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외교청서를 통한) 일본의 공식화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4개의 섬은 모두 러시아의 고유의 영토”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하면서 평화협상을 중단하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을 비판했다”며 “일본 외무성은 쿠릴열도 남부에서 실시되는 군사훈련과 관련해 러시아 측에 정기적으로 항의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