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윤 대통령의 구제 정책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이며 ‘빚투(빚내서 투자)’와 ‘생활형 채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생활비나 병원비가 부족해 빚의 늪에 빠진 사회적 구제가 필요한 청년들의 원금 탕감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청년들, 코로나 & 3고(高) 충격 가장 커
코로나19가 대유행한 3년간 20~30대 대출은 30% 가까이 증가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청년층의 대출 증가는 초저금리와 함께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벌어진 자산 격차에 ‘빚투’가 한몫했다. 하지만 빚투에 가려진 이면에서는 고금리․고물가․고실업에 하루를 힘겹게 버텨나가는 저소득 청년들의 대출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30대 이하의 금융권 대출 잔액은 514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말(404조원) 대비 110조5000억원(27.4%) 늘어난 액수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보면 30대의 증가율이 가장 높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의 대출은 25.5% 불었고, 40대 9.2%, 50대는 2.3% 증가하는 데 그쳤다.
30대는 금리인상과 함께 늘어난 부담을 빚으로 돌려막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3곳 이상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447만3000명 가운데 30대 이하 청년층이 139만명(31.1%)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1억302억원) 대비 8.3% 증가한 수치다.
20대에서는 제때 돈을 갚지 못한 채무불이행자가 급증했다. 지난해 6월 기준 20대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8만4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생계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20대 청년 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처음 빚을 지게 된 이유로 ‘생계비 마련 목적’이라고 답한 이들이 43%,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윤 대통령 “금리인상 부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 안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금리 상승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그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지목하며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지만 그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선 안 된다”며 “정부가 선제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커질 것이고 청년세대들은 꿈과 희망을 잃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2개월 뒤 1년 한시적으로 신속채무조정 청년특례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해당 특례 프로그램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의 저신용 청년(34세 이하)을 대상으로 채무 상환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려주고, 이자를 30∼50% 감면해 주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청년특례 프로그램은 당장 빚을 갚을 상황이 안되는 청년들에게 장기적으로 상환 기회를 줌으로써 청년들의 채무불이행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
예컨대 32세의 청년은 부족한 어머니의 병원비를 카드로 메우기 시작하면서 5000만원의 빚을 졌다. 그가 저축은행과 카드사에서 빌린 돈의 이자는 최고 19.5%에 달했다. 원금과 이자 상환에 압박받던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채무조정이다. 그는 신속채무조정을 통해 10년간 빚을 나눠갚기로 하고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기에서 벗어났다.
신속채무조정 청년특례 프로그램은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5개월 만에 5000명 가까이 지원했다. 이들의 전체 체무액은 1783억원, 1인당 채무는 평균 4790만원이다. 특례를 받은 청년들의 평균 이자율은 43.4% 낮아졌고, 전체 이자 감면액은 724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재는 올해 4월부터 지원 대상이 전 연령대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빚투 ‘도덕적 해이’ 논란에 흔들린 정책
신속채무조정 청년특례 프로그램은 출시 초기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제도 도입을 발표할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자산 가격 조정에 따라 저금리 환경에서 돈을 빌려 주식, 가상자산 등에 투자한 청년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투자손실 등으로 애로가 큰 저신용 청년들이 신속하게 재기할 수 있도록 신속채무조정 특례제도를 신설하고 관계기관 간 협업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의 발표 이후 정부가 세금을 들여 ‘빚투’로 손해를 본 청년층의 대출을 탕감해 주는 것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산했다. 당시 여당 의원까지 나서 “암호화폐(가상자산), 주식 등을 투자하기 위해 진 빚(빚투)을 일부라도 국가가 대신 갚아주는 것만은 신중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대통령실까지 나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청년층 신속채무조정은 대출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일부 낮춰 채권의 일체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는 제도”라며 “원금탕감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도 “설명이 잘 못 됐다”며 원금 탕감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신속채무조정 과정에서 기초생활수급자, 고령자 등 상환여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을 대상으로 원금을 일부 탕감해 주지만 저소득 청년들은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 못 했다.
청년 진짜 다시 일어설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빚의 늪에 빠진 청년들 구제를 위해 채무조정 지원에 나섰지만,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영향이다. 단적으로 상환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려 빚을 갚을 기회를 주었지만 20~30대부터 10년간 소득의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 경우 해당 청년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히려 이러한 채무조정은 채권자인 은행이나 카드사를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현재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자와 채권자의 협상에 의한 채무조정은 채무조정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지원 효과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이를 단축하고 지원효과를 높이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무불이행은 신용평가를 통해 갚을 수 있는 수준의 돈을 빌려주는 금융사의 기존 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만큼 금융사도 책임이 있다”며 “현재는 모든 책임이 채무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의 재기를 지원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속채무조정 보다 법원의 회생이나 파산 등 원금 탕감이 가능한 정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채무자의 상태에 따라 재기를 위해 신속 채무조정 보다 원금 탕감이 가능한 법원의 회생이나 파산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다”며 “채무자에게 적합한 채무조정의 안내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