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안정화에 집중하는 가운데 서울 가양동 CJ공장 부지 개발 사업이 변수로 등장했다. 4조원 규모의 CJ공장 부지 개발 사업이 좌초 위기에 빠지면서 시장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해당 사업의 PF 브릿지론만 1조3550억원에 달해 사업이 좌초될 경우 당국의 시장 안정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투자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가양동 CJ공장 부지 개발 사업 시행사인 인창개발은 지난달 24일 강서구청을 상대로 ‘건축협정 인가 취소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앞서 강서구가 지난해 9월 건축심의에서 결정했던 ‘건축협정 인가’를 5개월 만인 올해 2월 시행사인 인창개발에 돌연 취소 통보했기 때문이다.
CJ공장 개발사업은 강서구 가양동 92-1번지 일대 10만5775㎡(연면적 79만7149㎡) 규모의 공장과 유휴부지를 지하 5층~지상 17층 규모의 복합시설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총 사업비가 4조원 규모에 달하며 현재 사업 추진을 위해 부국증권이 주관사로 미래에셋과 KB증권 등 6개 증권사가 11개 SPC를 통해 총 1조 3550억원의 브릿지론을 이미 조달한 상태다. 현대건설이 지급보증에 나섰으며, 시행사는 매월 67억원의 이자를 납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제2의 레고랜드’ 사태로 부르며 지자체 리스크로 평가하고 있다. 강서구청은 입장문을 통해 취소 사유에 대해 “지난해 8월 건축협정인가가 접수됐을 당시,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는 데 따른 구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가권자인 구청장(지난해 7월 취임) 등에게 보고 또는 어떠한 회의도 없이 담당 사무관 전결로 처리해 깊이 있는 검토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지자체 내부 의사결정 문제로 1조355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사업이 좌초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인창개발 관계자는 “건축 허가를 신청한 지 법적으로 90일 이내에 승인 또는 반려, 보완을 요청해야 하지만 구는 아무런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면서 건축허가의 전 단계인 건축 협정을 취소해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강서구가 법적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고 있어 소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개별 사업 개입은 어렵다”
PF시장은 최근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부동산 경기가 크게 상승해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호황기는 ‘금리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위기를 맞이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본격화된 PF 관련 리스크가 올해 상반기 본격화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캐피탈사들이 초단기성 대출로 연장한 브릿지론들의 만기가 하반기 대거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4분기 만기가 도래한 브릿지론의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본 PF 전환에 실패해 금융회사들이 3·6·9개월의 형태로 연장했다”며 “금리 상승 기조에서 더 높아진 금리로 연장을 했기 때문에 상반기 개별 사업장의 리스크가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를 PF로 보고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PF 사업자 보증공급 확대 △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지원 △건설사 자금지원 등 ‘50조원 + α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3600여개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권 PF 대주단 협의체를 가동해 PF 사업장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이자 감면 등의 금융 지원 유도에도 나섰다.
다만 개별 사업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 중인 금감원은 가양동 CJ공장 부지 개발사업에 대한 개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별 사업에 대한 PF 리스크 규모 등은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사업 방향이 명확히 결정되지 않은 민간사업에 개입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민간 업체와 지자체의 갈등 구조여서 더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리스크를 파악하고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개입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국의 노력으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던 PF시장이 타격을 받을까 우려한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브릿지론의 금리가 조금씩 내려가고 수도권 분양시장이 살아나면서 본PF로 넘어가는 경우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는데 1조원이 넘는 브릿지론이 터지면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
1조 355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이 좌초될 경우 그 타격은 6개의 증권사를 중심으로한 캐피털사와 지역 새마을금고, 은행 등 40여 곳의 대주단과 현대건설에 집중될 전망이다. 특히 해당 PF사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질 경우 지급보증에 나선 현대건설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김정주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현대건설이 1조 3000억원 지급 보증한 상황에서 (해당 사업이) 실제 디폴트 상황에 빠진다면 현대건설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며 “현대건설이 추진하는 다른 사업까지 포함해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건설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지자체 리스크로 시장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행정안전부나 서울시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개입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담보로 제공된 CJ공장 부지의 가격 상승으로 현대건설이 충격을 충분히 감당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문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처음에 매입했을 당시보다 토지 가격이 상당히 올라 금액 대비 위험성이 크게 높지 않을 수 있다”며 “현대건설의 현재 재무 상태 등을 감안했을 때 감당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업의 PF 브릿지론 1조3550억원 중 43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상반기에 도래한다. 시행사 측은 현대건설의 지급보증 등을 바탕으로 당장 브릿지론 연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4300억원의 브릿지론 연장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면 사업 자체가 무산될 것”이라며 “당장 올해 안에 결론이 나지 않으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