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가 하루 만에 포기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고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으로 보인 자신들의 행위는 그저 ‘시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의 30년 인연은 끝난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은 무장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분노했다. 이번 반란 사태와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CNN·ABC·BBC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란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중재로 일단락된 가운데,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이 각자 입장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바그너가 모스크바를 향한 진격을 멈춘 것을 두고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무장봉기는 어떤 식으로든 진압됐을 것”이라며 정권을 향한 반란은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을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반란 주동자는 조국과 자신의 추종자들을 배신했다”며 “반란 주동자는 러 병사들이 서로를 죽이길 원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같은 결과를 원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초기부터 심각한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나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조치가 취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반란을 조직한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대해 ‘범죄’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으로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균열이 갔다는 지적을 불식하기 의한 의도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바그너 그룹 멤버 중 벨라루스로 가고자 하는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바른 결정을 내린 바그너 그룹의 병사들과 사령관들에게 감사하다”며 “국방부나 다른 기관과 계약을 맺어 러시아를 위해 일하거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벨라루스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 이후 안보기관 수장들과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다고 크렘린궁 대변인은 밝혔다. 이 자리에는 프리고진이 퇴진을 요구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장관 등이 참석했다.
푸틴의 연설은 프리고진의 발언이 나온 직후 이뤄졌다. 프리고진은 반란 회군 이후 첫 음성 메시지를 SNS에 올리고 모스크바 진격이 러시아 병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전복을 목표로 행진한 것이 아니라 항의 표시를 하기 위해 행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진의 목적은 바그너의 파괴를 막고 비전문가적인 행동으로 특수 군사 작전 중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이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국방부가 자신의 군대를 포격으로 조준한 것에 대해 재차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회군 이유에 대해 모스크바 인근에 집결한 군용 차량 등을 언급하며 “많은 피가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멈췄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용병들이 하루 만에 러시아 내부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1000㎞를 진군한 것을 언급하며 “이번 행진으로 인해 국가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반란 사태에 대해 미국은 관여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미국과 동맹국들은 푸틴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서방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를 비난할 수 있는 핑계를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말 동안 러시아 반란 사태에 대응을 위해 동맹국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국가안보팀에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외교채널을 통해 러시아에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커비는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미국이 이러한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 내부 문제로 간주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며 “적절한 외교 채널을 통해 러시아 측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