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휴대전화 번호, 꼭 알아야 하나요?

선생님 휴대전화 번호, 꼭 알아야 하나요?

기사승인 2023-08-14 06:00:15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교사 A씨는 이번 방학 때 휴대전화 번호를 바꿀 계획이었다. 알려준 적 없는 휴대전화 번호로 최근 한 학부모에게 연락받았기 때문이다. 교무실에서도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라며 “소름 끼친다”라고 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지난달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이야기다. A씨뿐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 교사들은 민원 창구를 일원화해 교권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학부모가 교사와 직접 소통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최근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전국 교사 2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0.3%가 ‘학교 민원 창구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민원 절차 서면화와 교권 침해 방지, 무단 교내 방문 금지 등을 원한다. 또 현장교사 정책TF팀이 지난 4~6일 2만1317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사 중 약 78%가 민원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다.

악성 민원을 피하려고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사용하는 교사들도 많았다. 한 초등교사 B씨는 “휴대전화, 문자 등으로 학부모들의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라며 “이미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 등으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마련하거나 휴대전화 번호를 2개로 이용 중”이라고 밝혔다. 교사 C씨는 “과거 업무용 휴대전화를 사용했다지만, 업무 시간 외에도 연락이 와서 지금은 안 쓴다”라며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소통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교육계에서도 악성 민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음달부터 ‘교사 면담 사전예약 시스템’을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교육부에서는 ‘학교 민원창구 일원화 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교장 직속 ‘민원 대응팀’을 전담해, 학부모가 교사 개인 휴대전화로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작 현장 교사들은 이를 실효성 떨어지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교사들은 교사 면담 사전예약제를 ‘갑질 예약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C씨는 “이미 정식 상담 주간에 예약을 잡지만,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제도와 상관없이 학교로 찾아온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민원 대응팀에 대해 교사 D씨는 “민원을 누가 떠안느냐가 아니라, 민원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교사 E씨도 “교장이 민원을 받고 일선 교사들에게 관련 지시를 하면 결국 선생님들에게 돌아온다”라고 밝혔다.

교사들은 민원창구를 단일화해 학부모와 교사의 직접 접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교사 정책TF팀은 학교, 교육청, 나이스플러스, 메신저 등 여러 방식으로 오는 민원을 통합하고 중간에 필터링을 거쳐 교사에게 전달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들은 “1단계 ARS와 챗봇을 통해 간단한 문의를 해결하고, 2단계 나이스 서면 상담으로 교육청과 관리자, 교사 3단계로 단계적인 민원 해결, 3단계 전화‧방문 상담으로 진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1,2단계 민원 시 욕설, 협박, 모욕이 섞인 악성 민원은 ‘교권 침해’로 분류해 전화, 방문 상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현장교사 정책TF팀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민원창구 단일화를 통해 직접 접촉 예방(79.4%), 교육권 침해 가능성 내용 사전고지(66.7%) 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원창구 단일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학부모 의견도 있다. 공식적인 민원창구가 생기면 오히려 소통하기 편할 것 같다는 얘기다. 임모(38‧여‧직장인)씨는 “학교 급식에 매운 국물이 계속 나와 아이가 밥을 못 먹고 귀가하는 일이 반복됐다”라며 “민원을 넣고 싶어도 코로나19 시기라 학교에 방문할 수 없었다.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라고 토로했다. 임씨는 “학교에 소통창구가 없으면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게 된다”라며 “공식적인 민원창구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

모든 학부모들이 교사와 직접 소통을 원하는 건 아니다. 세 자녀를 키우는 서모(40대‧여‧직장인)씨는 “선생님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지 꽤 됐다”라며 “알려주지 않는 상황도 이해하고 학교 앱이 있어 소통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라고 밝혔다. 임씨도 “선생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한 일이 한 번도 없다”라며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한 건 학기 초 학부모 상담 때 물어보고, 할 말이 있으면 교실로 전화하거나 학교 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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