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 출산’ 등 보건의료 현장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마련하고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손볼 계획이다.
김한숙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국가보건의료 정책 방향: 현실과 미래를 잇는 제도’ 토론회에서 2024년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와 쿠키건강TV가 주관했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다. 당장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 출산 등이 불거지며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지역의료 공백도 상당한 수준이다. 지역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1.69명인 데 비해 경북은 0.52명, 충남 0.59명, 충북 0.69명에 그쳤다. 300명 이상 종합병상이 없는 시·군·구는 140개, 응급의료센터가 없는 곳도 121곳에 달했다.
게다가 노인인구 증가로 의료이용 수요는 폭증하는데, 이를 감당할 의료진이 부족하다. 전체 노인의 84%가 만성질병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54.9%는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을 진료할 임상의사는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6명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진료비 지출도 증가하고 있다. 전체 의료비 중 65세 이상 진료비 비중은 2012년 16조4494억원에서 2022년 44조1187억원으로 늘었다. 10년만에 168% 급증한 수치다. 경상의료비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11년 5.9%에서 2021년 9.3%로 급증했다. 8.6%에서 9.7%로 늘어난 OECD 평균 증가율과 비교해 봐도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보건의료정책 방향으로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 가속화 △국민 의료 수요 충족을 위한 서비스 확대를 내세웠다.
김한숙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지역·소득 격차가 기대수명 및 건강 격차로 연계되지 않도록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감안해 급성기 질병 중심에서 복합·만성질환 중심 질병구조로 전환하고, 국민 의료수요 충족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복지부 올해 목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마련·의료전달체계 개편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우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마련할 방침이다. 김 과장이 이날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엔 보상체계를 손봐 진료과목별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저평가 필수의료를 선별해 집중 인상하고, 난이도·위험도·시급성을 반영한 공공정책수가 개선, 사후 네트워크 보상 등 새로운 지불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기피하는 전공의에 대한 근로 여건도 개선한다. 전공의 연속 근무시간을 현실화하고, 수련실태조사를 실시한다. 또한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덜기 위해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의료진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민형사상 책임을 부여하는 등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방침이다.
의료 전달체계도 수술대에 올린다. ‘국립대병원과 같은 거점병원-권역 필수의료센터-지역 2차 병원-동네 병의원’으로 이어지는 지역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병의원 진료 협력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립대병원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한다.
진료비 부담 완화, 수가제도 개편…2024년 달라진 복지 정책
올해부터 달라지는 복지 정책도 있다. 필수의료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입원·수술 등 수가제도를 개편한다. 그간 수술과 입원 분야 등 상대가치 점수의 불균형으로 필수의료 서비스 공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영상, 검체 검사 등 과보상 분야의 수가 조정을 통해 확보된 재정을 입원과 수술 등 필수의료 서비스에 투입하고 인적 보상을 강화한다. 또 심뇌혈관 질환 전문치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현장과 병원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을 일원화할 계획이다.
아동을 위한 의료 지원도 대폭 늘어난다. 생애초기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2세 미만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을 5%에서 0%로 줄인다. 또 소아진료 공백을 막기 위해 야간·휴일 운영하는 병원에 운영비를 추가 지원한다. 또한 소아의료 전문의 균형 수급을 유도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등을 대상으로 수련보조수당을 매월 100만원씩 지급한다.
재난적 의료비 산정기준과 지원기준 해당 여부를 ‘동일 질환’이 아닌 최종 입원 진료 또는 외래진료 이전 1년 이내 발생한 ‘모든 질환’에 대해 발생한 의료비를 합산해 판단할 예정이다. 이에 기준금액 미달로 지원을 못 받는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정특례를 통해 지원 받을 수 있는 대상 환자도 늘어난다. 정부는 희귀·중증난치질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 비용을 낮춰주는 산정특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달부터 83개 질환이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으로 신규 지정됐다.
국민이 받을 수 있는 건강서비스도 늘어난다. 오는 7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시행돼 정신질환 사전예방·조기발견을 위한 지원이 강화된다. 또한 5월부터 학생 건강검진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위탁돼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검진이 가능해진다.
이밖에 보건의료제도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된다. 오는 5월 부정수급 방지를 위해 요양기관이 신분증 등을 통해 환자의 본인확인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를 실시한다. 그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594개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만 보고할 의무가 있었는데, 이를 모든 의료기관으로 확대한다. 보고항목도 총 1068개로 늘어난다.
자살예방 상담번호는 ‘109’로 통합 운영한다. 기존의 자살예방 상담번호는 1393(자살예방상담), 1577-0199(정신건강 상담), 1388(청소년 상담) 등으로 분산돼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기억하기 쉽고 긴급성을 담은 3자리 번호인 ‘109’를 통해 전담할 예정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