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가 들썩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대면진료 ‘약 배송’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다. 의약계는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한마디에 약 배송이 허용될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판교 제2테크노벨리 기업지원허브창업존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정부가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진료를 이어가고 있지만 원격 약품 배송이 제한되는 등 불편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많은 국민이 비대면진료에 관해 법 제도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늘 제기된 문제를 법 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비대면진료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약 배송에 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특히 민생토론회 전날인 29일 사전설명회에서만 해도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약 배송 부분은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있어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결정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현재 야간·휴일엔 누구나 비대면으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지만, 의약품은 약국 방문수령이 원칙이다. 야간·휴일에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더라도 문 연 약국을 찾기 힘들거나 혼자 사는 1인 가구라면 약품 수령이 어려워 정책 효과성이 크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코로나19 유행 당시엔 약 배송이 허용됐다는 점에서 업계와 소비자들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일 때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는 약 배송도 허용된 형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위기단계가 하향되면서 약 배송도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윤 대통령이 약 배송 규제 개선 의지를 드러내면서 업계 기대감은 커지는 모양새다. 이슬 닥터나우 대외정책 이사는 “대통령이 규제 개혁 의지를 밝히면서 약 배송이 허용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약 배송, 약국 방문 등 약품 수령 형태를 환자와 약사가 직접 협의한 방식대로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길 바란다”며 “이는 기존 코로나19 유행 당시 시행했던 한시적 비대면진료와 동일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약계 우려는 여전하다. 게다가 약 배송 관련해 심도 있는 전문가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기 위해선 의료법과 약사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약 배송 관련 약사법 논의가 나온 적도 없다.
황은경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약준모) 부회장은 “약국에서 복약지도를 하는 건 환자의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중 하나”라며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비대면진료 처방이 가능한 식욕억제제엔 마약 성분도 포함돼 있다. 약 배송이 가능해지면 약을 한꺼번에 배송 받고 사망하는 사례가 없으란 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도 “대통령 발언에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아직 약 배송에 관한 전문가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되면서 도출된 문제점이나 제도적 허점에 대한 보완책이 제시되지 않은 채 무작정 확대하는 측면에서 우려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