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제주 4·3사건’ 추념식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여당에서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야당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추념식에 불참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불참을 두고 ‘이념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이에 제주 4·3사건이 또다시 정쟁으로 얼룩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제76주년 4.3 추념일을 맞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념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 측 인사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대표가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한 위원장은 이날 충주와 강원, 춘천, 경기권을 방문해 총선 유세를 나섰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불참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여야 대표가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진보‧보수 진영이 제주 4.3사건을 아직까지 엇갈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적 이념과 진영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제주 4·3 사건은 과거 ‘공산 폭동’이나 ‘항쟁’이냐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1999년 여야 공동 합의를 통해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3년에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다. 2014년이 되어서야 국가 추념일로 지정되며 역사적·이념적 논쟁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국가 행사로서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우 보수 정당 출신으로는 첫 참석이었다.
그러나 일부 국민의힘 후보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 따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조수연 후보는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 4·3 사건에 대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일어난 무장 폭동’이라고 했다. 태영호 서울 구로을 후보는 작년 2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4·3은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정부와 여당 핵심 인사가 불참한 것을 두고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4·3 학살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정치집단이 국민의힘”이라며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은 앞장서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갈라치기하더니, 2년째 4·3 추념식에도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부겸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불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제주 4·3 사건은 이제 역사적 논란이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보수진영에서는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의 입장이 바뀌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4·3 추념식은 진영을 떠나 희생자를 위로하고 유족의 상처를 보듬는 자리”라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희생자를 위로하고 유족의 상처를 보듬기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비판을 맞받아쳤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춘천시 유세 현장에서 이 대표의 ‘4·3 학살의 후예’ 발언을 두고 “이 대표는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일베(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출신”이라며 “이 대표야말로 제주 역사의 아픔을 이용만 해왔지 실제로 아픔을 보듬기 위해 행동한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정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이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의 막말을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며 “시대의 비극이자 국가적 아픔까지 정치공세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묻지마’식 막말에 근거는 따져볼 가치조차 없다. 당장 사과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민주당에 대한민국과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투표로 반드시 심판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 위원장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추념식 불참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희생된 모든 4·3 희생자분들 마음 깊이 추모한다”면서도 “추모하는 자리에 함께해야 마땅하나 지금 제주에 있지 못한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