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알피바이오가 한센병 치료제인 ‘라프렌연질캡슐50㎎’(성분명 클로파지민)을 생산해온 시간이다. 알피바이오는 코로나19가 유행하며 감기약 생산량 증대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했던 상황에서도 한센병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제 공급을 놓지 않았다.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발생하는 2급 법정 감염병으로, 만성 전염성 질환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감염성 질환이다. 주로 피부와 신경에 침범해 증상을 나타내며, 방치할 경우 사지 무감각 등의 장애를 남길 수 있어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한국나병통계에 따르면, 한센병 관리사업 대상자 수는 지난 1969년 3만8229명으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8965명을 기록했다.
국내 신규 발병 환자는 많지 않다. 질병관리청의 지난 10년간 한센병 신고·발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10년간 보고된 한센병 환자는 45명(내국인 27명, 외국인 18명)으로 매년 5명 이내로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한센병 퇴치 목표(유병률 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를 지난 1982년에 도달했고, 선진국 수준의 관리를 유지하고 있다.
환자가 많은 편도 아닌데 알피바이오가 한센병 치료제 공급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5일 경기 화성시 알피바이오 향남공장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김광민 공장장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태준제약이 개발해 알피바이오가 제조하고 있는 라프렌연질캡슐은 국가필수의약품 및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알피바이오는 라프렌연질캡슐의 제조 의뢰를 받았을 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라프렌의 주성분인 클로파지민은 원료의 특성상 작업장 오염이 매우 심각한 성분이기 때문이다. 침투성이 강해 한번 제조할 때마다 펌프, 다이 등 연질캡슐 제조 설비를 오랜 시간 세척해야 한다. 이는 전체 제품 생산 공정에도 영향을 끼치는 만큼 작업장은 생산을 꺼릴 수밖에 없다. 다른 연질캡슐 제품의 경우 생산 전후 준비와 세척 공정에 3~4시간이 소요되는데 라프렌은 12시간이 걸린다.
“그 당시 태준제약과 보건사회부(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직접 알피바이오 공장을 방문해 라프렌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다른 작업장들은 모두 생산을 마다했지만 알피바이오는 회사의 이윤과 무관하게 반드시 공급해야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약품이라는 것에 공감해 제품을 생산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감기약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알피바이오 직원들은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한센병 치료제 생산을 계속했다. 김 공장장은 감기약 품절 대란에 대처하고 더불어 국가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역할과 책임을 지키는 동안 어깨가 무거웠다고 회고했다.
“전문성과 기술력, 생산시설을 통해 국민 건강 증진 및 형평성에 기여하고 국가와 긴밀한 협업을 이어가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센병을 근절하기 위해 고품질 의약품 공급을 유지하고 혁신적 연구를 지원하며, 발병 지역의 의료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자 합니다.”
김 공장장은 알피바이오 뿐만 아니라 국내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필수·희귀의약품 공급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 재정적 인센티브 지급, 인프라 투자 등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알피바이오 등 최첨단 제조시설을 보유한 CDMO 기업이 희귀의약품 생산을 위한 전문 시설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보조금 정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또 환자의 경제성과 제조업체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가격 정책을 구현해야 합니다. 원가 인상과 관련한 입증 과정을 조금 더 유연하게 적용해 희귀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 제약사들이 생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알피바이오는 전 세계 연질캡슐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갖는 미국 ‘알피쉐러’와 대웅제약이 합작 투자해 지난 1983년 설립한 연질캡슐 전문 CDMO 기업이다. 대웅제약의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 유한양행의 마그네슘 영양제 ‘마그비’ 등 국내 연질캡슐 의약품의 60%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6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뉴네오솔(New Neosol)’ 공법을 활용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3년 동안 유효 성분 함량이 90% 이상 유지되는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