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53)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53)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기사승인 2024-09-02 12:45:39
파블로 피카소, 빗을 든 여인, 1906년, 종이에 구아슈, 139x 57 cm, 오랑주리 미술관

만일 인류가 멸망하고, 외계인이 피카소의 그림을 발견한다면 지구 여인들은 이렇게 생겼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우리는 피카소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 그러나1906년 이런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생경함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몇 년 전 미술관에서 십대 초반의 두 소년이 여러 작품들이 전시된 방에서 ‘이건 피카소야!’라 말하며 그림 앞으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우리는 여러 작품 중 피카소를 선별해 낼 수 있는 선구안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피카소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양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체의 여성이 기다란 검은 머리를 빗고 서 있는 모습을 종이에 그린 매우 큰 이 그림은 피카소 스타일의 급진적인 전환을 알린다. 이 구아슈(Gouache) 그림에서 머리와 신체의 불균형, 그림의 단축, 얼굴의 새로운 양식화 등 세부사항이 눈에 띈다.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라 말했다.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습작기를 지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원초적인 조형언어를 찾기 위한 창작의 고통과 모색의 지난한 시간을 말하고 있다. 단순한 삼각형 모양을 한 가슴과 치골의 도식화는 피카소를 입체주의로 이끄는 요소로, 그런 예는 <빨간색 배경의 누드>에서 찾을 수 있다.  

피카소는 같은 해에 같은 주제의 시리즈를 계속 그렸다. 웅크린 채 머리를 빗는 여성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버전은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1929년에 아트딜러 폴 기욤(Paul Guillaume)은 피카소의 <빗을 든 여인>을 구입했다. 그가 죽은 뒤, 미망인 도미니카(Domenica)는 몇 년 동안 피카소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판매하였지만 이 그림은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 빨간색 배경의 누드, 1906년, 캔버스에 오일, 81x 54 cm, 오랑주리 미술관

<빗을 든 여인>보다 입체주의가 태동되는 단계에서 훨씬 더 발전된 피카소의 <빨간색 배경의 누드>는 1906년 말의 작품이다. 긴 머리를 가진 이 누드 여인은 평범한 빨간색 배경과 대조되며, 머리카락을 잡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우아한 자세이다.

그러나 오른쪽 팔꿈치의 과장된 구부러짐 같이, 왜곡된 신체 형태를 도식화한 표현은 입체주의의 맥을 잇는다. 얼굴은 곡선으로 강조되고, 눈은 검은 아몬드 모양처럼 간단하게 표현되어 가면처럼 보인다. 

고대 이베리아 예술은 피카소가 <거투루드 스타인의 초상>을 마무리한 인간 형상을 표현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전환기로 알려진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기 몇 달 전에 제작된 오랑주리 미술관의 <빨간색 배경의 누드>는 벌써 수많은 변형의 싹을 품고 있었다.   

프랑스 근대회화를 주로 전시하는 튈르리 궁전의 오렌지 온실을 리모델링한 오랑주리 미술관, 출처: 위키피디아

바르셀로나에서 파리까지 오는 동안 피카소는 엘 그레코(El Greco), 마네, 세잔, 마티스 그리고 반 고흐와 고갱 등을 만나며 그들의 화풍을 거쳤다.

또 잠시 퓌비 드 샤반과 앵그르, 그리스 미술, 최근에는 카탈루냐의 로마네스크와 이베리아 반도의 조각상들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아직 스물다섯에 불과했다. 19 살이란 어린 나이에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의 초대로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하기 위해 파리로 왔지만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시간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침반을 손에 쥐고 자신의 방향을 찾았다.  

이때, 1906년 말 피카소는 마티스를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할 획기적인 그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처음 의도는 성병과 매춘을 풍자하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다섯 명의 여인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관객을 노려보는 누드화가 되었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채, 243.8x233.7cm, 뉴욕현대 미술관

분홍색과 차가운 파란색, 중립적인 갈색공간을 채우는 배경에 여인들이 간결하게 분절된 형태로 등장한다.

왼쪽의 세 여인은 이베리아 스타일의 가면을 쓰고 오른쪽의 두 아가씨는 1907년 3월에 트로카데로 박물관에서 본 아프리카 부족 가면을 쓴 여인인데, 피카소는 그들을 변형시켜 좀 더 공격적이며 강렬한 표현으로 수정했다. 그들은 마치 전사처럼 보인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는 크게 벗어난다.

아름다움은 미술에 대한 가장 고전적 정의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여인의 누드로 표현된다. 고대의 누드에서 출발하여 르네상스 시대를 관통한 조화와 균형을 갖춘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는 홍등가 여인을 주제로 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로 끝이 났다.

가운데 두 여인은 허벅지에 침대보를 다리에 감고 드레이퍼리로 여러 효과를 냈던 거장들을 패러디하며 우릴 유혹한다.  

이 콘셉트를 구상하는데 이탈리아 출신인 아폴리네르의 소설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Les Onze Mille Verges>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라보 다리>로 잘 알려진 서정시인 아폴리네르가 돈이 필요해 쓰던 소설을 원고 상태로 피카소에게 보여주었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극단적인 사드 (Sade, 1740~1814) 식 성적 유희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물론 그 외에도 피카소의 사창가 경험이 녹아 들었다.  

무엇보다도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파리로 온 뒤 모든 것을 공유하던 친구 카사헤미스(Carlos Casagemas)가 자살한 충격이 컸다. 이는 20대 초반의 피카소가 재능을 낭비한다는 비평을 받게 한 청색시대를 열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 후 카사헤미스의 애인이었던 제르멘느(Germaine)와의 연애를 통해 갖게 된 성과 죽음, 그리고 예술 창작을 위한 상상력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라는 예술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다. ​

피카소는 누구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적 집착을 솔직히 드러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직감했다. 이 그림은 사창가를 배경으로 하는 관음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여인들을 향한 피카소의 욕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또한 강력한 동시대 작가 마티스와의 경쟁 심리도 은근히 스며들어 있다. ​

​피카소의 친구였던 시인 앙드레 살몽(Andre Salmon)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불안해했다. 캔버스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 붓을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또 수없이 많은 밤낮 동안 그리고 또 그렸다. 그러나 보상 없는 헛된 노동은 아니었다."  

왼쪽부터 죽기 직전의 모딜리아니, 피카소, 앙드레 살몽, 출처: 위키피디아

천국 같던 고솔에서 피카소의 뮤즈 올리비에는 여신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와서는 그녀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매춘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올리비에가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자, 질투심으로 작업실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피카소는 동물적인 집착과 가학적인 애증, 권위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기적이며 언제나 자신만을 사랑했던 나쁜 남자였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로 신화를 썼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9개월 동안 모든 생각, 모든 지식, 모든 정력을 여기에 쏟아 부었다.

피카소는 그 과정 중 16권의 스케치북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수많은 습작을 남겼다. 그리하여 현대 예술 작품 중 가장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 걸작을 남겼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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