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강국' 대한민국 알코올성치매 급증

'음주강국' 대한민국 알코올성치매 급증

기사승인 2014-12-01 14:15:55
"젊은층 치매 환자 증가 원인, 조기 치료하면 회복 가능

흔히 노인성 질환으로 여겨졌던 치매가 젊은층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09년까지 30~40대 젊은 치매 환자 수는 60% 가까이 증가했는데, 특히 젊은층에서 치매가 급증하는 이유는 알코올성치매가 주요 원인이다.

소위 '폭주'하고 있는 성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알코올성치매 환자가 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고위험음주율은 남성은 2005년 23.2%에서 2009년 24.9%로 증가했고 여성은 같은 기간 4.6%에서 7.4%로 증가했다.

음주를 즐기는 젊은성인 대부분은 자신의 알코올성치매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알코올성치매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증상을 방치할 경우 짧은 기간에 노인성치매로 발전할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심각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난달 21일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2014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도 알코올성치매를 주요 이슈로 다룬 바 있다. 이에 알코올성치매의 병태생리학적 기전을 살펴보고 대표적인 증상들과 치료전략에 대해 집중해부했다.

◇초기에는 뇌 기능에 문제, 반복땐 뇌 구조 변화시켜

전체 치매 환자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알코올성치매는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해 우리 뇌의 기억 관장 영역들이 손상을 입으면서 발생한다.

초기에는 뇌 기능에만 문제가 생길 뿐 구조에는 변화가 없지만 뇌 손상이 반복되면 알코올성치매로 발전하게 돼 뇌가 쪼그라들고 뇌 중앙에 위치한 뇌실이 넓어지는 등 뇌 구조에도 변화가 생긴다.

알코올성치매 환자의 뇌를 단층 촬영해보면 기억을 담당하는 구조물의 변화 외에 뇌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소뇌에도 위축이 나타나 떨림이나 보행 시 비틀거림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알코올성치매의 이 같은 증상들은 병태생리학적 기전인 △에탄올 자체의 독성 △티아민의 결핍 △간 기능의 손상 등으로 분류해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술의 주성분인 무색의 가연성 화합물 에탄올의 독성이 뇌를 손상시킨다. 특히 아세트알데히드나 지방산메틸에스테르(fatty acid methyl ester) 등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저해를 비롯해 신경세포의 손상을 유발시키고, 산화질소(nitric oxide)와 지질과산화(lipid peroxidation) 활성 산소물질을 증가시킨다. 이는 DNA 손상 및 유전자 발현을 저해해 신경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

티아민의
결핍도 주요 기전 중 하나로 티아민이 부족하면 뇌 내에서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 대사 등 모든 생화학적 경로에 심각한 장애가 유발된다.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Wernicke-Korsakoff syndrome, WKS)에서의 기억상실증후군도 티아민 결핍으로 인해 시상핵과 유두체를 포함하는 간뇌-해마의 손상으로 특히 전시상핵의 신경세포 소실을 일으킨다.

음주는 뇌뿐만 아니라 간 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치는데 에탄올에 의해 손상받은 간은 해독 기능을 상실하고 암모니아 및 망간의 축적으로 뇌 혈류와 대사 및 성상세포의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뇌 내 망간 수치 역시 상승하는데 이는 도파민계에 영향을 줘 산화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신경독성을 유발시킨다. 광범위한 면역 반응을 촉발해 중추신경계의 염증 및 신경세포의 퇴행을 유발시킨다.

◇전두엽부터 손상돼 초기부터 폭력적 성향

반복된 음주습관은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알코올성치매 증상 중 하나인 '블랙아웃(black-out)' 현상이 나타난다. '필름이 끊긴다'고 표현하는 블랙아웃은 유도성 기억장애로 음주 중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알코올이 기억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인 해마에 영향을 미쳐 뇌의 정보 입력 과정을 방해할 때 생긴다.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애초부터 저장된 정보가 없으니 출력할 정보도 없는 것이다. 필름이 끊겼다던 사람이 무사히 집을 찾아오는 것은 예전에 뇌에 저장됐던 정보를 출력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블랙아웃 현상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뇌 손상을 일으켜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알코올성치매의 또 다른 증상은 알코올성 정신장애에도 동반되는 폭력성이다. 뇌의 앞 부분에 위치한 전두엽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으로 알코올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

노인성치매와 달리 알코올성치매에서 비교적 초기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띠는 것은 이 전두엽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술만 마시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폭력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주폭'이라고 하는데 이때는 알코올성치매를 의심해 봐야 한다.

또 다른 증상 중에는 기억장애가 있다. 초기에는 2~3일 전에 발생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나타나 점차 악화되면서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장기간의 알코올 섭취와 동반된 비타민 B1(티아민)의 결핍은 베르니케 코르사코프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기억 장애와 함께 보행 실조증(비틀거림), 안구운동장애 등도 발생한다.

이 외에도 만성적인 알코올의 섭취는 간손상을 일으켜 환각 증상, 간성뇌병증(Hepatic encephalopathy)도 유발하고, 기억을 못하는 상태에서 외상성 뇌손상 발병위험도도 높아져 경막하 출혈 등의 뇌내 출혈도 동반된다.

하지만 위의 증상들만으로는 알코올성치매라는 진단을 명확하게 내리기 힘들어 임상에서는 알코올과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인지기능 저하를 포괄하는 진단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David Oslin 교수는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DSM)과 함께 널리 사용되고 있는 NINCDS-ADRDA의 치매 진단기준을 토대로 알코올성치매 진단 기준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음주량, 음주 횟수, 동반 신체질환, 인지기능 장애, 뇌영상 소견이 함께 반영됐다.

먼저 명백한 알코올성치매(Definite alcohol related dementia)의 경우 현재까지 받아들여진 진단 기준은 없다고 명시했다. 반면 알코올성이 유력한 치매(Probable alcohol related dementia)의 경우 기준을 A·B·C·D 총 4가지로 나눠 권고했다.

A. 알코올성이 유력한 치매의 임상적 진단을 위한 기준으로는 △마지막 알코올을 먹은 후 최소 60일 후에 임상적으로 진단된 치매인 경우와 △심각한 알코올 섭취가 치매 최초 진단 3년 내에 있어야 한다(심각한 알코올 섭취란 남자의 경우 1주에 최소 평균 35 표준잔(여성 28 표준잔) 이상을 5년이상 섭취한 것을 말한다).

B. 알코올성치매의 진단을 지지하는 소견에는 △알코올과 관련된 간, 췌장, 소화기, 심혈관, 및 신장, 기타 장기가 손상되거나 △운동실조 혹은 말초감각신경병(다른 질환에 의한 것이 아님) 존재하고 △60일 이상 금주 시 인지손상이 안정화되거나 호전됐을 때 알코올성치매로 진단을 내릴 것을 권했다.

C. 알코올성치매의 진단을 의심케 하는 소견들도 제시했다. 여기에는 △언어장애 특히 명칠실어증 △국소 신경징후나 증상(운동실조나 말초감각신경병의 증상을 제외) △피질 및 피질하 뇌경색, 경막하 혈종 혹은 국소 뇌병변 △하친스키 허혈 점수가 높을 경우 알코올성치매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D. 알코올성치매의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소견들도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뇌위축을 보이는 뇌영상 소견들 △국소 뇌경색은 없이 뇌실 주변과 백질에 병변이 보이는 경우 △아포지질단백e4 대립 유전자가 존재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알코올성으로 진단이 가능한 치매(Possible alcohol related dementia)에는 마지막 알코올을 섭취하고 최소 60일 후에 임상적으로 진단된 치매 가운데 다음 둘 중의 하나가 만족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최초 인지손상이 있기 전 유의한 알코올 섭취가 3년 이상 10년 이내에 있거나 △혹은 심각할 가능성이 있는 알코올 섭취가 치매 최초 진단 3년 내에 있어야 한다(심각할 가능성이 있는 알코올 섭취란 남자의 경우 1주에 최소 평균 21표준잔(여성 14잔)이상을 5년 이상 섭취한 것을 말함).

◇메만틴, 알코올성치매 치료약 유망주

아직까지 알코올성치매에 대한 명확한 진단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 치료에 대한
연구결과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관련 증상이 나타나면 적극적으로 진단 및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무엇보다 술을 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알코올성치매 발병 위험도가 높은 알코올의존증 환자는 금주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어 치료 프로그램을 잘 따를 수 있도록 가족 및 주변 지인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술로 인해 균형이 깨진 영양과 인지기능을 호전시킬 수 있는 비타민 제제나 뇌혈류 개선제 등을 처방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인지기능의 회복을 기대하는 대증적인 치료가 일반적이다.

알코올성치매의 약물치료전략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관련 약물인 도네페질(donepezil)과 리바스티그민(rivastgmine)을 알코올성치매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증상이 효과적으로 개선됐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가 보고돼 알코올성치매 환자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하지만 메만틴(memantine)이 효능면에서는 유망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다. 메만틴은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수용체 길항제로 국내에서 중등도에서 중증의 알츠하이머 병의 치료제로 사용이 승인됐다. 이 약물은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감소시키고, 알코올 섭취 이후 손상된 인지기능의 개선에도 기여한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화영 교수는 ""실제로 WKS 환자 16명을 대상으로 28주간 메만틴을 투여한 결과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느려졌고, FDG-PET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혈류 역시 정상을 회복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다만 알코올성치매만을 대상으로 한 체계화된 연구가 부족해 아직 단언하기에는 일러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박미라 기자 mrpark@monews.co.kr"
송병기 기자
mrpark@monews.co.kr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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