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배우 박해일

[쿠키인터뷰]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배우 박해일

기사승인 2016-07-29 19:00:02


박해일은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배우다. 그는 언제든 선을 넘어 다른 면으로 갈 수 있다. 스크린 속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년과 노인, 위선과 위악 등 이면을 오가던 박해일이 이번에 또 다른 선을 넘었다. 영화 ‘덕혜옹주’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을 최근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의 비극적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박해일은 이 영화에서 김장한 역할을 맡았다. 김장한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신문사 기자이며, 독립투사이고 일본군인 동시에 덕혜옹주의 정혼자다. 박해일은 단순하지 않은 역할의 여러 면을 쉬이 오가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언론시사회 때 기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덕혜옹주’를 봤다는 박해일의 소감은 담담했다. 배우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볼 때, 촬영 상황이 떠올라 작품 자체를 순수하게 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해일은 “손예진 씨가 옆자리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집중이 안 됐다”는 농담을 하다가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고 ‘해일아 수고했다’는 소회가 들기도 했다”고 영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김장한은 실존인물인 김장한, 김을한 형제를 혼합해 만든 인물이다. 실존인물이긴 하나 허구적인 부분이 많다. 이런 이유 덕분에 박해일은 “실존 인물에 대한 고증에 신경 쓰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해일은 김장한에 대해 “렌즈처럼 관객에게 상황을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영화 ‘덕혜옹주’를 볼 때 관객은 덕혜옹주를 찾는 김장한의 뒷모습을 따라가게 된다.

“김장한은 목적은 결국 덕혜를 귀국 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영화 안에서 김장한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고요. 저는 김장한의 그 마음이 어릴 적 덕혜옹주와 약혼을 할뻔 한 순간부터 생겼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김장한은 실제로 덕혜옹주를 김포공항에 입국시킨 인물이기도 하죠. 이런 연결점들이 만나 허진호 감독표 영화 ‘덕혜옹주’에서 실존인물에 기반을 둔 캐릭터를 적절하게 극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허진호 감독이 만드는 ‘덕혜옹주’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박해일이 말하는 허진호 감독은 “최소한의 터치로 배우의 감정과 호흡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연출력을 지난 사람”이다. 박해일은 허진호 감독이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미묘한 방법이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미묘한 지점을 만들기 위해 이번 촬영 현장에서 허 감독과 많은 대화를 통해 상황과 감정을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 몇 개도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만들었다고. 박해일은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을 “허진호 감독과 막걸리를 마셨을 때”라고 답하며 배우로서 한 명의 창작자를 알게 되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덕혜옹주’를 통해 박해일이 만난 창작자는 허 감독뿐만이 아니다. 박해일은 상대역이자 이 영화의 타이틀롤인 덕혜옹주를 연기한 손예진을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났다. 새로운 호흡도 신선했지만, 박해일은 손예진이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덕혜옹주를 연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표현했다.

“이번 영화는 배우 손예진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손예진이라는 사람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알아가면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었어요.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김장한이 덕혜를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았나 싶어요.”

‘덕혜옹주’를 촬영하며 허리 부상당한 이야기를 꺼내자, 박해일은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다”고 말하다가 이내 “부상 얘기는 재미없다”고 웃으며 말을 아꼈다. 너무 다른 배우들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영화는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15년 동안 연기하며 달라진 점에 대해서도 “제가 달라진 것을 스스로 포착하긴 힘들다”며 “지금도 그저 계속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박해일은 좀처럼 선을 넘지 않는 대답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에 이면은 없었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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