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일명 ‘신해철 법’이 첫발을 뗐다. 환자단체는 환영하고 의료계는 반발하며 서로 다른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유가족과 의료기관 간 분쟁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자폐성·정신장애를 제외한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상대방의 동의가 없어도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중복장애로 인해 장애 1급이 되거나 이미 장애 1급인 상태에서 의료사고로 동일 부위에 장애가 추가 발생한 경우는 제외된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놓고 의료계는 “분쟁조정신청이 남발돼 중환자기피법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지난 2일 대한의사협회는 “시행령 입법예고안에서는 의료행위 결과 장애 1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등은 자동조정 사유에서 제외키로 돼있었으나 반영되지 않았고, 이의신청 세부사유에 대한 고시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주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중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은 불안하지 않겠느냐”며 “개정안에 조정절차에서 제외되는 이의신청 대상 등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아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고시제정을 통해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만 의사협회는 고시제정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응급실과 병동 환자들을 담당하는 전공의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응급실과 병동에서 많은 환자들 보고 있다. 자동조정절차로 인해 안 좋은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법안에 신경쓰다보면 심각한 중환자가 나타날 경우 진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앞으로 중환자를 보는 외과 등 일부 진료과 지원율은 낮아지고 병원 간 환자 전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걱정과 달리 이번 개정안 시행에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영의 입장을 전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극히 일부지만 앞으로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조정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조정절차가 남발될 것’이라는 의료계의 우려에는 반박했다. 안 대표는 “자동조정절차 대상이 사망, 중상해 중 극히 일부로만 제한돼있는데도 이 대상을 더욱 한정하자는 것은 피해구제제도의 원칙에 맞지 않다”며 “지금도 변호사 선임 비용만 있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의사들이 중환자를 기피해온 바는 없다. 분쟁조정이 자동개시 된다고 해서 마치 중환자를 기피할 것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분쟁조정법에 의무기록에 대한 확인 절차를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의무기록지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과실 및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며 “의무기록을 병원이 사후에 수정한 경우 수정 전후 기록 모두를 발급해 줘야 어떤 내용이 수정됐는지 알 수 있다. 수정한 경우 관련 접속기록 자료와 수정내용을 별도로 작성·보관하도록 의무화하는 입법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