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당신은 아직 영화 ‘옥자’를 보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 감탄했던 당신도, ‘옥자’가 어떤 이유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는지 궁금했던 당신도,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등 할리우드 배우의 활약을 보고 싶었던 당신도 마찬가지다.
이해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옥자’는 봉 감독의 이전 작품과 달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지도 못했고,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익숙지 않은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을 찾아서 예매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넷플릭스 서비스를 신청해서 보는 것이 더 나을까 하는 고민도 귀찮은 일이다. 기대한 만큼 재밌진 않았다는 지인의 반응을 접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당신은 ‘옥자’를 봐야 한다. ‘옥자’는 100개 남짓한 개봉관 수에도 꾸준히 박스오피스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좌석 점유율은 개봉 5일 만에 350만 관객을 돌파한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멀티플렉스 이외의 극장들이 관람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넷플릭스의 편리함과 방대함을 미리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옥자’를 혹평했던 지인이 그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기 위해 거짓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가. ‘옥자’를 스크린에서 보지 않았던 지금 선택이 2017년 가장 후회되는 일로 남을지 모른다.
△ 영업을 결심한 결정적 순간
재기발랄한 오프닝 장면도, 슈퍼돼지 옥자의 귀여운 엉덩이도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가 옥자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변희봉)가 건넨 금돼지를 집어 던지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돼지저금통을 깨는 순간도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손녀가 현실을 받아들이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과 돼지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소녀의 마음이 동시에 이해가 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미자가 미란도 코퍼레이션 한국 지부의 단단한 유리문으로 달려가 온몸을 부딪쳤지만 유리문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던 내 마음의 벽은 산산조각 났다. 미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 전해졌다. 그 이후에도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진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오로지 옥자를 되찾고 싶다는 미자의 마음 하나로 일어난다. 어찌 그 마음을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옥자’를 영업하는 이유
① ‘옥자’는 봉준호 감독 영화의 정수다. 과거 봉 감독의 영화들처럼 어딘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금방 공감하게 되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내용이다. 그 속도감 그대로 한국과 미국의 공간을 넘나든다. 영화 전반에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는 점도 익숙하고,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봉준호의 영화임을 되새기게 한다.
기존 봉 감독 영화의 장점에 새로운 시도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과거 선악 구도 대립의 형태를 띠었다가 그 경계가 약해지는 방식으로 전개됐다면, 이번엔 삼각 구도로 대립한다. 미란도와 미자의 대립 구도에 동물 보호 단체가 끼어든 형국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대표하거나 완전한 조직, 완전한 사람은 아니다. 무언가를 향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난 세 개의 세력은 영화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서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② 또 하나는 ‘옥자’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보통 영화를 봐야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알 수 있지만, ‘옥자’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동물 인권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이 맞다.
하지만 ‘옥자’는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전달 방식에 더 집중한다. 낯선 미자와 옥자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을 주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관객의 마음을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온갖 위선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세계에 미자와 옥자를 데려다 놓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줄기 빛처럼 내려온 탈출구가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동화 같은 교훈담이지만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한다.
③ 한국인과 외국인이 보는 ‘옥자’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상상력을 덧붙여 재구성하는 봉준호 감독의 재주를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강원도 산골과 서울의 공간을 지켜보면 “한국 관객들이 꼭 스크린에서 ‘옥자’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봉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강변북로를 활용하는 방식이 백미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말 서울시는 ‘옥자’ 촬영을 위해 강변북로 일부를 통제한 바 있다. 영화를 보면 왜 다른 곳이 아닌 강변북로에서 그 장면을 찍어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어떤 상상을 하며 강변북로를 오갔던 걸까.
△ ‘옥자’를 보면 좋을 관객
① 애완동물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거나 채식주의를 선호하는 관객.
② 우리가 먹는 고기들이 다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 한 적이 있는 호기심 많은 관객.
③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스티브 연이 우리에게 익숙한 곳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관객.
④ 평소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환상, 혹은 불신을 갖고 있던 관객.
⑤ 돈만 받으면 회사의 일 따위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인생관을 갖고 있는 20대 비정규직 관객.
⑥ 굳이 양갱을 먹으면서 ‘설국열차’를 감상했던 간 큰 관객.(이번엔 소시지!)
★ [고독한 영업남] : ‘이건 반드시 사야 돼’ 싶은 신상 구두를 발견한 순간처럼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훅 빠져든 바로 그 순간, 이 좋은 걸 나 혼자 간직하는 건 인류의 낭비라는 죄책감이 들어 글을 읽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지한 궁서체로 영업하고 싶다는 사적 욕망을 본격 실현하는 쿠키뉴스의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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