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했다. 너무 오랜 고민, 많은 생각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배우 김지원은 지난해 큰 인기를 누렸던 KBS2 ‘태양의 후예’에 출연한 이후 1년 4개월을 쉬었다. 이제 막 주연급 배우로서 발돋움하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긴 시간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차기작을 골랐다는 얘기다.
장고 끝에 둔 김지원의 선택은 신의 한수였다. 김지원은 ‘태양의 후예’에서 딱딱한 군인 윤명주 역할을 소화했던 것과 달리, KBS2 ‘쌈, 마이웨이’에서 자유롭게 속에 할 말을 다 하는 아나운서 지망생 최애라 역할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드라마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쌈, 마이웨이’는 선악구도나 재벌 2세, 장르적 요소 등 보통 드라마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것들 없이 매회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현 시대를 반영하는 20대 청년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봉은사로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김지원도 ‘쌈, 마이웨이’가 인기를 끈 이유로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꼽았다.
“촬영하면서도 배우들끼리 재밌는 장면이 많다는 얘기를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재밌는 대사를 매 장면 쓸 수 있나 싶었죠. 대사와 장면들에 생활감이 많이 묻어 있어서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도 공감이 많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고동만(박서준)이 애라를 만나러 가기 전에 집에서 섬유탈취제를 옷에 뿌리는 장면이 있어요. 실제로 향수가 없으면 저런 거라도 뿌린다며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죠. 또 애라의 구두 한 쪽이 부러져서 발에 비닐봉지를 묶고 있는 장면도 있었어요. 저도 비 오는 날 구두가 부러져서 한 번 그랬던 적이 있거든요. 시청자분들도 그런 디테일한 장면에서 재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김지원은 ‘태양의 후예’와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싶어 ‘쌈, 마이웨이’에서 완전히 내려놓은 연기를 펼쳤다. 망가지는 것도, 욕을 하는 것도 그녀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즉흥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제가 SBS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같은 전작들에선 딱딱하고 이지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렸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내려놓고 풀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작가님이 대본을 그렇게 써주시기도 하셨고요. 처음 도전한 만큼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이런 연기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즐겁게 촬영한 것 같아요. 제가 멜로 장면을 찍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박서준 오빠가 알려주고 이끌어주는 대로 잘 따라갔어요. 주인공 네 명이 모인 장면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었죠. 시청자 분들도 즉흥적인 연기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극 중 최애라는 아나운서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애라는 격투기 장내 아나운서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최애라를 연기한 김지원의 인생에도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오디션을 보러가게 된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이 됐어요. 오디션을 보러올지 말지 결정하라며 명함을 받았죠. 만약 제 일생일대의 결단을 꼽으라면 캐스팅됐던 그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 이후는 합의하에 진행되는 안전한 결정들이 많았거든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거나 공연하면 옆에서 피아노 치는 것을 쭉 해왔어요. 그 나이 대에는 그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그때 오디션을 보지 않았으면 뭐하고 있었을까요.”
김지원은 ‘쌈, 마이웨이’를 통해 주연 배우로서 합격점을 받았다. 최애라를 실제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인물로 그려냈을 뿐 아니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박서준과의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도 호평 받았다. 하지만 김지원은 ‘쌈, 마이웨이’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의미가 더 컸다. 앞으로도 연기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갈 계획이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늘 원점이에요. 이만큼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비워져 있다는 걸 느끼죠. ‘쌈, 마이웨이’에서는 내려놓고 편하게 연기하는 것을 배웠어요.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멜로 연기하는 것도 배웠고요. ‘태양의 후예’ 때는 이뤄질 수 없는 아픈 사랑의 멜로였다면, 이번엔 달달한 멜로를 경험했죠. 제가 올해 스물여섯 살인데 앞으로 보여드릴 것들이 너무 많아요. 계속 연기를 쭉 한다면 남은 시간이 길잖아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넓혀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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