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은 역사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의 시작은 엔터프라이즈.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뒤 故 정주영 명예 회장이 시승해 보고 이렇게 좋은 차를 못 팔았나며 상당히 놀랐다고 한 차량이다.
1997년 출시된 엔터프라이즈는 당시 현대차 다이너스티에 대항하기 위해 디자인을 국내 취향에 맞게 손질하고 후균구통을 채댁했다. 주행성과 코너링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했다. 하지만 기아차의 부도로 판매량이 반토막났다. 여기에 1999년 현대 에쿠스가 출시되면서 2003년까지 근근히 양산되다 오피러스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오피러스는 에쿠스나 체어맨보다 한단계 아랫급으로 포지셔닝 됐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의 실질적인 후속 모델은 K9이라고 볼 수 있다.
6년만에 풀 체인지 모델로 선보이는 ‘THE K9’은 겉모습무터 달라졌다.
전면부는 풍부하고 섬세한 면처리와 아일랜드 파팅 기법이 적용된 후드. 빛의 궤적을 형상화한 주간주행등(DRL), 시퀀셜(순차점등) 방식의 턴시그널 램프가 적용된 ‘듀플렉스(Duplex) LED 헤드램프’등 고급감을 강조했다. 그동안 지적을 받았던 기아 엠블럼도 와인 빛 그라데이션과 입체적 자형으로 차별화했다. 후면부는 세련된 인상과 고급스러움의 조화로 완성도를 높였다. 헤드램프와 통일된 디자인 그래픽을 적용해 일체감을 구현하면서도 램프 주변에 메탈릭 베젤을 적용한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가 적용됐다.
휠베이스가 기존 모델 3045㎜에서 3105㎜로 늘어나 실내공간 역시 여유로운 공간성을 확보했다. 실내 디자인도 각 부분들의 연결감을 강화해 앞좌석 운전자와 탑승자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듯한 안락한 공간감과 안정감을 선사했다.
특히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은 넓어진 홈 화면에서 다양한 위젯을 원하는 곳으로 재배치할 수 있으며 우측 분할 화면을 통해 번거로운 화면 간 이동 없이 내비게이션 안내를 받으면서 미디어, 공조, 날씨 등 다양한 컨텐츠를 동시에 확인 가능했다.
운전석에 앉았다. 유럽산 명품 천연가죽 소재가 리얼 스티치로 박음질된 시트가 출발하기 전부터 편안함을 줬다. 시동을 걸자 디지털화 된 계기판에 멋스럽게 빛이 들어왔다.
이날 시승한 차량은 3.3 터보 GDi 최상위 트림이었다. 시승구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강원 춘천 더플레이어스GC까지 왕복 약 155㎞구간이었다.
시내 주행에서 정숙성은 마치 하이브리드처럼 조용했다. 주행 중 왼쪽 방향지시등을 켜자 왼쪽 계기판에 옆차선의 모습이 들어왔다. '후측방모니터(BVM)'가 작동돼 안정적인 차선 변경이 가능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스포츠 모드로 변경했다. 계기판이 빨간색으로 바뀐 후 rpm이 2000대로 상승했다. 시트도 허리를 꽉 잡아줬다. 속력을 냈다. 큰 덩치에 맞지 않게 힘차게 나아갔다. 고속에서도 안정적 주행기 가능했다. 이 차는 쇼퍼드리븐을 위한 것이 아닌 오너드리븐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길로 구성된 와인딩 코스에서도 가볍게, 날렵하게 코스를 통과했다.
트윈 터보차저 시스템을 적용해 최고 출력 및 실용 성능을 향상시킨 3.3 가솔린 터보 모델은 최고출력 370 PS, 최대토크 52.0㎏f·m의 성능을 발휘한다.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었다. 바로 터널이 나타났다. 그러자 창문이 저절로 닫혔다. 터널 진입 전 자동으로 창문을 닫고 내기순환 모드로 전환하는 ‘터널연동 자동제어'가 작동된 것이다.
반환점에서 뒷좌석으로 교체했다. 회사 임원들처럼 조수석을 앞으로 한껏 젖혔다. 키 186㎝의 성인도 발을 뻗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운전자는 스포츠모드로 힘껏 달렸지만 뒷좌석은 편안하다. 깊은 숙면이나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과속방지턱에서도 가벼운 출렁거림만 있을 뿐이다.
이날 연비는 10㎞/ℓ를 기록했다. 모든게 완벽했지만 차로유지보조 장치 등 운전자에게 도움을 줘야 할 시스템들이 너무 깊게 개입해 운전 중 시스템들을 꺼야만 했다.
라인업은 ▲3.8 가솔린 ▲3.3 터보 가솔린 ▲5.0 가솔린 등 세 가지 모델로 구성되며 판매가격은 3.8 가솔린 모델이 5490만~7750만원, 3.3 터보 가솔린 모델은 6650만~8230만원, 5.0 가솔린 모델은 9330만원이다.
초반 시장반응은 성공적이다. 고가임에도 불구 4주만에 3000대나 계약됐다. 국내 판매 목표는 올해 1만5000대, 내년 2만대로 책정됐다.
과거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들의 아쉬운 성적표를 바꿀만한 기대작으로 충분했다.
이훈 기자 ho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