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영화는 없다 [취재진담]

유아인의 영화는 없다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05-30 07:25:20
배우 유아인. 연합뉴스

‘승부’의 배턴을 ‘하이파이브’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배우 유아인의 마약 논란으로 기약 없이 박혀 있던 창고 영화들이 모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여론은 싸늘하다. 그렇다고 별수 있나, 영원히 묵혀둘 순 없는 노릇이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그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스크린에 걸리는데, 심판대에 오르는 분위기다. 마약사범이 주연인 작품이니, 보지도 않고 거르는 일각의 반응은 감내해야 할 기본값이다. 그냥 주연도 아니다. 영화에서 덜어내면 이야기 자체가 어그러지는 역할을 아주 쏙쏙 골라 맡았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유아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유감스러운 점은 작품을 보고 나니 유아인의 안목만큼은 비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를 치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존재만으로 영화 자체가 평가절하당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분명 잘 만든 작품임에도 대다수 관계자가 공개 자체만으로 감격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비단 ‘승부’, ‘하이파이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사한 사태가 다신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러한 논란이 마지막이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최근 연예계 학폭(학교폭력) 칼바람이 불었을 때, 관련 이슈로 편성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드라마만 여럿이다. 제2의 유아인, 제3의 유아인이 작품 공개에 걸림돌이 되는 날은 필시 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작품을 폐기해 없던 일로 해버리는 편이 가장 깔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투자사, 제작사, 배급사의 이해관계 등 산업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선수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서 받기로 계약한 경우, 작품 공개 여부는 더더욱 중차대한 사안이 된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만큼 막대한 손실이 따르지만,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이를 모두 책임질 방법은 없다. 금전적으로 일부 배상한다고 해도, 작품에 쏟은 인력은 감히 환산할 수 없다. 당사자를 도려내고 공개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품 배치 하나하나까지 의도하는 종합 예술에서 맥락 없는 편집은 난도질이나 다름없다.

미래의 문제적 배우를 알아보지 못한 게 죄라면 죄겠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영화(드라마)는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투입되는 자본에 수치화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개 연기도 이미 피해를 감수하고 내린 결정인데, 폐기나 전 분량 편집은 리스크를 떠안는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요구다.

물론 이렇게 공개되는 작품들이 범죄자의 복귀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소비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불매나 캐스팅 단계인 차기작을 비판하는 방식으로도 표출할 수 있다. 그리고 제작자에게도 미우나 고우나 자식 같은 작품을 지킬 권리가 있다. 단 한 사람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흘린 피땀마저 범죄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가혹한 처사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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