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비리와 갑질 의혹이 불거지자 경찰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근무했던 사회복지사와 아이들을 보냈던 부모들은 1년 만에 착수한 경찰 수사가 때늦었다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15일 오전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산청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근무했던 사회복지사들과 아이들을 이곳에 보냈던 부모들이 이 시설의 내부 비리와 갑질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전직 직원‧보호자 “비리‧갑질 종합판”
이들은 우선 이 시설의 낙후된 인권 의식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시설에 있는 장애인 거주인은 남성 20명, 여성 15명으로, 남성은 남성지도사가 목욕 등을 시켜야 하는데 남성지도사가 없다보니 남성 거주인들의 목욕도 여성지도사들이 도맡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무리 지적장애라 해도 의식이 있고 표현을 못해도 부끄러웠을 것이며, 목욕을 시킬 때 남성 거주인들의 신체적 변화 때문에 여성지도사들도 매번 곤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또 무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이 때문에 여름에는 아이들이 땀띠를, 겨울에는 동상에 걸려 연고를 발라주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뿐만 아니라 방안에 가두고 식사량을 줄이는 등 학대 정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시설 원장은 누워 지내는 뇌병변 1급 장애 거주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지시해 3개월 동안 바깥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 방에만 있어야 했다”면서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한다고 하며 밥도 조금만 주라고 했다. 23㎏ 정도였던 이 학생은 몸무게가 3~4㎏ 빠지면서 건강도 악화됐다”고 했다.
이어 “최근 경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이 거주인에 대한 학대 정황이 확인돼 결국 전원 조처됐다”고 덧붙였다.
◇1년 만에 수사 착수한 경찰…왜?
이들은 이 시설의 비리와 갑질이 계속된 데에는 행정기관과 경찰의 안이한 대응도 한몫했다며 성토했다.
내부적으로 쉬쉬해오던 문제가 하나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경남도는 지난해 12월 이 시설에 대해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경남도 감사 결과 이 시설은 보조금 문제 등 13가지 지적 사항이 적발됐다.
경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도 첩보를 입수하고 경남도에 수사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경찰은 이 공문에서 ‘내사 중인 이 시설 보조금 횡령 관련해 경남도 감사 자료가 수사상 필요해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남도 감사실에서 이 시설의 ▲보조금 지급 현황 ▲보조금 집행 내역 ▲사회복지법인 운영자금 ▲대표이사 등 부정사용 보조금 현황 등 감사자료 일체를 요구했다.
이에 이들은 “경찰에서 경남도 감사실에 수사요청을 했고, ‘내사 중’이라는 말에 당연히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1년 가까이 돼 가는데 경남도는 물론 경찰이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담당수사관(경찰관)은 산청군청이 비협조적이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시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직원 연락처를 수사관에게 건넸지만, 경찰에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수사관은 해당 직원이 제보를 해주지 않아 수사를 못한다고 말했다”며 “경남도와 산청군에서도 별다른 행정 조치를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서였다”고 지적했다.
경남도가 최근 산청군에 이 시설의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경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요청했고, 산청군은 지난 14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경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날 이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설이 경남도 감사에 적발된 지 1년 만이다.
이들은 “1년 전에 한 감사 결과를 두고 이제야 확인한다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에 대해 경남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기관 공문에는 형식적으로 ‘내사 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실제 공식적인 내사 단계가 아니었다”면서 “제보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비협조적이어서 진척이 없어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것도 지자체에서 수사의뢰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사회복지사와 부모들은 “이제라도 용기를 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혹들이 있다. 꼭 밝혀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시설 원장은 전화통화에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원장은 “땀띠가 났다는 부분은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기저귀를 착용하는데 이 거주인은 기저귀 발진이 생긴 것이며, 동상에 걸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 급여 문제 등 갈등으로 생기면서 퇴사한 전직 직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청=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