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변한 게 없네. 시간 낭비한 기분’ 이별을 이야기하는 여인의 말엔 시퍼렇게 날이 섰다. 20일 전부터 마음먹은 이별. 마지막을 고하기 전, 상대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20분은 곤욕스럽기만 하다. 가수 이하이가 자신의 새 미니음반 수록곡 ‘20분 전’(20MIN)에 담은 이야기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 서울 양화로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하이는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내 경험담을 쓴 곡”이라고 귀띔했다.
소녀 시절 앳된 얼굴이 아직 선명한데, 노래에 담긴 감정은 제대로 무르익었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이하이는 어느새 스물넷의 여인이 됐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음반 제목을 ‘24℃’라고 지었다. 스물네 살 이하이는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갑다. 그의 복잡스런 속내는 알엔비, 발라드, 트로피컬 등 다양한 장르에 실려 온다.
“오랜만에 내는 음반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또 제가 오디션 프로그램(SBS ‘K팝스타 시즌1’) 출신이다 보니, 어릴 적부터 저를 봐오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지금 저의 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담으려고 했죠.”
3년 남짓한 공백 끝에 내는 음반. 이하이는 “작업은 계속 해왔는데, 타이틀곡으로 삼을 만한 노래를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음반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니, 이미 녹음을 마친 노래가 음반에서 빠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작업은 ‘누구 없소’를 만나면서 속도가 붙었다. 이하이는 “가이드 버전을 들었을 땐 (‘누구 없소’가) ‘해보고 싶은 노래’ 중 하나였는데, 가사가 붙은 뒤에는 ‘내가 해야 하는 곡’이라고 느껴졌다”고 했다. 하오체의 가사와 도발적인 내용, 인도풍의 사운드가 독특한 화음을 빚어낸다.
긴 공백은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하이는 “그 나이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감성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3년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땐 구슬을 꿰며 잡생각을 떨쳤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어머니와 한 때 팀으로도 활동했던 그룹 악동뮤지션의 수현에게서도 많은 위로를 얻었다.
“‘서울라이트’(SEOULITE) 음반을 준비할 땐 (긴 공백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조급해한다고 해서 음반이 빨리 나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여유를 갖고 더 좋은 노래를 찾는 것에 집중했죠. 하루는 심하게 지쳐 있는데, 수현이가 ‘이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소중한 시간’이라는 말을 해줬어요. 그 말을 들으며 반성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이하이는 자신이 “어른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 아이”에서 “어른스러운 가사를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수”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스물넷이라는 나이가 “자유로워진 것도, 책임져야 할 일도 많아진 나이”라고 느낀다. 이번 음반도 그렇다. 지난 음반보다 자신의 뜻이 많이 반영된 만큼, 스스로 져야 할 책임도 크다는 걸 그는 안다.
하지만 이하이는 왜인지 모르게 홀가분해 보였다. 예전에는 음원 차트를 계속 확인했는데, 이번엔 음반이 나오는 날인데도 크게 초조하지 않다고 했다. ‘해탈한 것 같다’는 말엔 “마음을 여유롭게 먹으려다 보니…”라며 웃어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오래 기다렸을 팬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이하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음 음반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