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들에게 '쉼터'를 만들어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신질환자가 일상적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달라는 것이다.
2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진주참사방지법 입법공청회에서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극심한 정신질환 혐오 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은 불안으로 점철된 일상생활을 겪는다.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갈 곳이 없다"며 지역사회 '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강제입원이나 약물치료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병원이나 정신복지센터는 믿을 수 없다는 전제도 깔려있다. 이 대표는 "강제입원 피해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신병원이나 정신복지센터에 가도 강제입원을 시킨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며 "정신질환 당사자들에게는 일상적 위기 순간에 휴식을 취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김상희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정신질환 인권단체 등과 함께 마련한 일명 '진주참사방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초안을 공개했다.
해당 법안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권역별 위기쉼터 및 일상쉼터 설치 및 운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응급대응팀 운영 ▲정신질환자 입원 시 환자 본인의 의사 반영하는 규정 신설 ▲정신질환 응급상황 발생 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응급대응팀 출동 ▲응급상황 발생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의료기관 등의 장이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신고 의무 부여 등 내용이 담겼다.
법안 마련에 참여한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법안은 정신의학의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간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한 절충적인 법안"이라며 "특히 응급대응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도 자기결정권, 당사자 옹호 등의 이념이 반영되는 등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인권친화적 정신건강서비스 제공의 관점으로 마련한 대응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법안보다 인력과 재정 지원, 그리고 조기 치료 연계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광주북구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진주사건의 경우 경찰의 대응에 대해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인득의 병력을 경찰이 알았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력이 현장에서 적절히 쓰이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현장에서는 해당법안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법안을 보면 광역센터가 응급상황 등에서 최초 조율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인력이 10~20명 수준인 센터에서는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응급 개입과 중재의 주체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주 지역의 경우 타지역에 비해 센터를 통한 응급 현장출동 건수가 12배나 높다. 이는 그만큼 많은 재정과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상황에서는 법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정신건강 관련 재정을 투입하고 인프라를 확중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정신질환자를 작은 울타리에 머물게 하는 목적이라면, 그 울타리가 병원이든 시설이든 쉼터든 모두 기만"이라며 "모든 치료는 환자를 내가 사는 똑같이 넒은 세상에서 살도록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급성기 치료의 응급대응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응급대응이 조기진단과 조기 치료와 합쳐지면 병의 만성화를 막아 장애를 없앨 수 있다. 환자들을 작은 울타리에 머무르게 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응급대응과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정신간호사들은 정신질환자의 고립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조했다. 김연실 대한간호협회 정신간호사회 경기지회장은 "입원 치료 후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이 때 센터 직원이 방문을 하거나 서비스를 받게되면 위험한 상태까지 가지 않고, 적절히 연계가 된다면 고립방지를 해소하고, 치료 중단 및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며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치료를 연계하는 방안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경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공성 확보'를 강조했다. 하 교수는 "정신질환자 대상 쉼터가 중요하지만, 쉼터를 민간에 맡겨놓는 한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위기대응팀이 정신복지센터의 사업으로 있는 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광역단체장 또는 보건복지부가 공공성 하에 정신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 관련 지원책 등을 마련 중에 있다고 밝혔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현재 정신질환 응급개입팀과 정신응급의료기관 지정 사업에 대한 준비 과정에 있다"며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치료에 대한 진료권 보장 등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른 숭고한 가치와 관련 실무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