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10년 주기로 돌고 돈다’는 이야기는 패션업계 정설로 자리잡았다. 오버핏, 빅로고 등 90년대 ‘올드패션’ 트렌드가 올해 다시 유행하면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이 변함없는 것은 아니다. 천정부지 치솟은 가격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이에 최근 ‘전통시장’에서 레트로를 찾는 소비자가 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동묘 구제시장’ ‘광장시장 구제상가’ 등이 대표적이다. 남녀노소 눈길을 사로잡은 구제시장의 매력은 뭘까. 직접 구제시장을 방문했다.
◇ “2000원, 3000원! 두 개 사면 5000원!”
지난 11일 방문한 동묘시장에서는 상상치도 못할 저렴한 가격에 제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올여름 유행했던 ‘뷔스티에’와 ‘플라워 프린팅 원피스’는 각각 3000원. 두 벌을 같이 구매하면 1000원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저렴한 가격이야말로 동묘 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날 동묘시장에서 만난 직장인 고아람(33·여)씨는 “오늘 시장에서만 옷 20벌을 샀지만 총 3만원밖에 들지 않았다”며 “백화점에서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지만 여기(동묘시장)에서는 단돈 몇천원만 주면 구매할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동묘시장 베스트 셀러는 블레이저, 코트 등과 같은 외투들이다. 겨울철 외투를 백화점, 아울렛 등에서 구매하려면 수십만원이 들지만 시장에서는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외투를 구매하기 위해 이천에서 동묘시장까지 왔다는 신모(24)씨는 “외투 가격이 부담되는데 구제시장에서는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싸게 살 수 있다”며 “외투는 3년째 동묘시장에서 구매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상점 사장님과 흥정하면서 제품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며 구제시장 쇼핑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빈티지 마니아만 찾던 구제시장은 점차 보편적인 쇼핑센터로 변화하고 있다. 보자기 위에 옷을 쌓아두고 도로를 점거했던 상점들은 인근 상가로 입점해 더욱 깔끔한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동묘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8개월째인 장성관(24)씨는 “동묘 인근에 젊은 사장들의 유입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 감각의 매장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젊은 층의 고객들도 많아졌다”며 “올해만 들어서도 노점이 아닌 상가에 가게를 차린 곳만 30여군데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 저렴하게 구매하세요.”
수십 가지 의류가 구비돼 있는 구제시장에서는 어떤 옷을 구매하는 것이 좋을까. 광장시장 구제상가에서만 옷을 판 지 20년 넘었다는 정씨(60)는 “구제시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을 보면 브랜드 제품을 찾는 이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찾는 이로 구분된다”며 “구제시장에는 의류에서부터 가방, 안경까지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정하고 오지 않으면 구경하는 데에만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예전에 유행했던 옷들이 다시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질 좋은 아우터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이 구제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해외 명품 브랜드를 찾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브랜드 제품을 찾아 구매하는 것도 좋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지 않나. 우리끼리는 이를 ‘보물찾기’라고 한다”고 말했다.
◇“수입 구제 1번지 광장시장, 외국인 방문객도 늘었죠.”
광장시장 구제상가에는 레트로 유행에 힘입어 최근 외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날 구제상가에서 만난 50대 이씨(구제 샵 운영 경력 20여년)는 “예전에는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사기 위해 많이 방문했는데,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추세”라며 “상인들이 이제는 외국어를 배워야 하나 걱정이 드는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해외에서 구제 샵을 운영하는 외국인 바이어도 광장시장을 자주 찾는다. 구제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40대 정씨는 “예전에는 주로 일본에서 구제 옷을 수입해왔는데, 최근에는 일본에서 빈티지 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옷을 대량으로 떼 간다”며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 등 패션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국가에서도 종종 구제상가를 방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구제상가가 글로벌 마켓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는 “유럽에는 유명한 구제시장들이 있다”며 “이제는 헌 옷이나 헌 신발을 샀다고 흉보는 시대가 아니다. 이런 빈티지 시장을 가진 곳, 국내 어디서 또 볼 수 있겠나. 국내 벼룩시장이 유럽과 같은 글로벌한 마켓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