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엄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코로나) 확산을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의 죽음에 중국 학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공개서한을 내놓았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의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공개서한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널리 유포된 이 서한에서 학자들은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원량을 포함한 8명의 의사는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렸지만, 오히려 괴담 유포자로 몰려 경찰의 처벌을 받았다.
학자들은 “이들 8명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침해당하고 말았다”며 “정부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 '내부고발자'에게 제기된 혐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들 8명에게 사과하고, 리원량을 순교자로 지정할 것도 요구했다.
학자들은 중국 헌법을 인용해 “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며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집단의 이익이나 다른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원량의 죽음 후 중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화중사범대학 교수들뿐만이 아니다. 베이징대 법학 교수인 장첸판(張千帆)은 “정부는 2월 6일(리원량 사망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법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지식인 사회가 이처럼 동요하는 가운데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정권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져 톈안먼 사태와 같은 거대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 유혈 진압한 ‘중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학 법학 교수는 “이번 사태는 대단히 큰 위기”라며 “중국의 여론은 지금껏 분열됐지만, 이제는 (리원량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과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친 교수는 “상황이 폭발할까 봐 걱정된다”며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직에 올라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1986년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1989년 4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이 죽음이 같은 해 6월 톈안먼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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