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글을 발표했다.
박정훈·이정찬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22일 ‘의사 수 부족, 진실 아닌 정치적 주장일뿐’이라는 글을 통해 “최근 총선과 코로나19 등으로 의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대 증설을 통한 의사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의사 부족문제, 지역경제 활성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의대 증원 및 증설의 주장 가운데 하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의사 수 비교가 자주 언급된다. 이들은 “OECD 통계만 보면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회원국 평균 3.4명인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2.3명으로 부족해 보이지만, 의사인력 산정 기준이 국가별로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미국이나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는 의사 인력 산정에 있어 전일노동자는 1명, 반일종사 노동자는 0.5명으로 계산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인력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국토면적 대비 의사밀도는 10㎢ 당 12.1명으로 ▲네덜란드 14.8명 ▲이스라엘 13.2명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5.18명으로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는 국토면적 대비 의사밀도가 5.44명에 불과해 단순 통계로 국내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인구감소와 활동 의사 증가율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활동 의사 수는 지난 2017년 10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활동 의사 수는 2012년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인구수는 감소해 의사 1인당 인구는 2012년 590명에서 2017년 523명으로 12% 감소했다. 꾸준한 인구 감소로 2028년이면 의사 수가 OECD 평균치를 추월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이들은 “지금보다 더 정밀한 의사 인력 추계가 요구된다”며 “임상의사 인력도 매년 2500명씩 증가하고 있다. 인력 과잉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행 저수가 체계를 유지하면서 의사만 추가 배출해 공급이 과잉되면 의사는 불가피하게 의료수요를 창출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국민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 수 부족 문제보다는 지역별 의료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43개 중 과반이 넘는 22개가 수도권에 분포해 있고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도 지방보다 수도권에 밀집된 상황이다. 이들은 “지역별 의료격차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설·장비·인력 등의 의료자원이 지역별로 불균형하게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환자들은 이러한 자원과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소재 의료기관을 신뢰하고 선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기 위해선 낮은 의료접근성이 입증돼야 하지만 당일 진료가 대체로 가능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진단검사 접근성이 다른 국가보다 우수했다. 기침과 발열 등 경미한 증상만으로도 검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의료접근성이 우수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는 ▲의료수요에 맞는 적정 전문인력 양성 ▲의사 인력 관리를 위한 전문조직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역 일차의료강화를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과 공공의료기관 역량의 강화 등으로 지역의료격차 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무조건적인 의대 신설이나 증원은 가장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의사 인력 수급조절 정책에 불과하다”며 “의사인력의 수급 논의는 광범위한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대입한다거나 단순 통계에만 의지해 수급을 관리하면 향후 공급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 명의 의사가 양성되는 데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의사 인력 양성체계 전주기를 감안해 통합적·체계적인 정책 개입이 수반돼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외부개입이 발생할 경우, 의사 인력수급에 있어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여러 부작용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