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정의(定義)란 어떤 말이나 사물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정의 아래의 글귀는 이 정의가 얼마나 완벽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수식에 불과하다. 결국 정의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 아래 어떤 말이 오더라도 모두가 ‘거짓’이 되는 것이다.
다음 달 7일자로 시행일 앞두고 있던 이른바 ‘재포장 금지법’이 해를 넘기게 됐다. 환경부는 전문가와 업계, 소비자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적응 단계를 거치는 등 관련 제도를 손질한 뒤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재포장 금지’가 ‘할인판매 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할인 판매 규제에 대해 언급한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과는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확산되자 숨고르기에 나선 모양새다.
실제로 환경부가 이달 18일 발표한 재포장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2000원 판매 제품을 2개 묶어 2000원에 판매하거나 2000원 제품을 2개 묶어 3000원에 판매하는 경우’를 재포장으로 규정했다. 반면 같은 제품을 2개 묶어 4000원, 3개 묶어 6000원에 판매하는 경우는 재포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해당 가이드라인에 ‘현행법에 허용된 종합제품으로써 판촉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다. 종합선물세트 등 제조업체가 기존 제품을 묶어 하나로 출시한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마트·편의점 등에서 제품을 임의로 묶어 판매하는 경우는 모두 재포장에 포함된다. 일부에서 ‘묶어서 할인은 불가, 정가로만 판매 가능’이라는 오해를 사기 쉽게 표현했다는 지적도 얼핏 타당하다.
문제는 단순히 종합선물세트냐 임의 묶음이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다.
환경부는 재포장 규제를 벗어날 수 있는 선택권을 제조업체에 부여했다. 판매채널에서는 규제 대상에서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제품을 묶어 납품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마트와 편의점 등 판매채널은 제조업체에 있어 갑(甲)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예고했던 규제인데 왜 그동안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제조업체들이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마트와 편의점 등의 매대는 한정돼있고, 이 매대에 자사 제품이 진열되기 위해 제조업체는 영업을 한다. ‘2+1’, ‘3+1’ 등 이른바 파격 행사 제품들은 제조업체가 시장 공략을 위해 전략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함도 있지만, 마트가 소비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미끼로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시행 초기에는 모르겠지만, 환경부의 설명대로 기존의 묶음 할인은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포장재의 사용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재포장을 제조 단계에서 하느냐, 유통 단계에서 하느냐의 차이만 생길 뿐이다. 뻔한 실패의 답습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포장의 정의는 새로 마련돼야한다. 6개월간 제도를 미룬 환경부의 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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