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숨쉬는 브랜드...‘유통 명가’로 등극하다 [가치를 쌓는 장인기업③]

철학이 숨쉬는 브랜드...‘유통 명가’로 등극하다 [가치를 쌓는 장인기업③]

무신사, 연 100개 이상 신진 브랜드 발굴
‘건강빵’ 개념으로 히트상품 출시한 SPC
일상에 스며드는 경험 제공한 씰리침대
GS25, 협업으로 고급 디저트 편의점 도입
롯데렌탈, 자동화 앱 사용자 150만명 돌파

기사승인 2025-04-28 06:00:07
편집자주
디지털·자동화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도 소비자들은 오히려 정성과 진심이 담긴 결과물에 더 높은 가치를 매깁니다. 이제 ‘장인정신’은 단순히 완벽한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기업의 브랜드 철학과 지속 가능성을 담는 진정성의 키워드로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축적된 시간의 힘을 믿는 장인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최고의 제품에 담긴 경영철학을 들어봤습니다.

제품을 파는 데서 그치는 유통의 시대는 지났다. 고객과 함께 브랜드를 키우고, 가치를 쌓고, 취향과 신뢰를 설계하는 플랫폼들이 오늘날 유통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는 가격보다 신뢰를, 속도보다 진정성을 중시하고 있다. 오픈서베이 ‘2023 온라인 쇼핑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소비자의 71%가 브랜드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40%는 부정적인 리뷰를 남겼으며 38.9%는 다른 브랜드를 선택했다.

이에 유통업계는 브랜드의 철학과 소비자와의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소비자와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설계하는 ‘장인정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유통업계에서는 '쌓는 유통'을 실천하며 장인정신을 구현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 현대백화점 울산점 개점을 앞두고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무신사 제공

신세대 유통 장인정신, 브랜드 너머 생태계도 키운다

브랜드 육성은 단일 기업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브랜드를 연결하고 시장을 확장하며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유통 플랫폼은 단순한 판매 창구에서 산업의 기준을 다시 쓰는 역할로 변모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생태계 형성에 기여한 사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무신사는 현재 1500개 이상의 국내 브랜드와 협업하며 종합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커버낫, 디스이즈네버댓, 마뗑킴 등은 무신사를 통해 시장성과 인지도를 확보했고, 백화점 입점 브랜드로까지 확장됐다. 무신사는 디자이너의 기획에 집중할 수 있도록 브랜딩, 콘텐츠, 물류를 지원하며 ‘패션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신사는 매년 신진 브랜드 발굴에 힘쓰고 있고, 이 중 다수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를 통해 국내 브랜드는 일본, 미국,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고 있으며, 일본 ZOZO와의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무신사는 단순 쇼핑 플랫폼을 넘어 브랜드 생태계를 조율하는 유통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생태계 조성은 단순히 기업의 외형 성장을 넘어, 국내 패션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무신사는 최근 브랜드 아카이브 콘텐츠를 강화하며, 자체 큐레이션 기반의 브랜드 저널도 운영 중이다. 브랜드 이력과 철학을 스토리 콘텐츠로 가공하고, 고객과의 감성적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다. 더불어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의 가격 전략과 할인 프로모션 기획도 함께 조율하며, 브랜드 철학이 훼손되지 않는 유통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파란라벨’ 라인의 제품들. SPC 제공

식품 업계에서도 유통의 장인정신은 기준 재정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SPC 파리바게뜨는 ‘건강빵’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구축했다. 통곡물빵은 대체로 거칠고 맛이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SPC는 이러한 편견을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했다. 토종 효모와 유산균을 결합한 발효 기술을 통해, 통곡물 특유의 거친 질감을 개선하고 촉촉한 식감을 구현했다. 단순한 기능 개선을 넘어 ‘건강빵도 맛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기술로 미각의 편견을 깨고, 브랜드 철학을 유통 전반에 반영한 사례다.

이에 파리바게뜨는 저속노화 트렌드에 맞춰 프리미엄 브랜드 ‘파란라벨(PARAN LABEL)’을 론칭하고, 전국 3400여개 매장을 통해 건강빵 대중화에 나섰다. 파리바게뜨가 내세우는 파란라벨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SPC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SPC는 한국 자연에서 발굴한 토종 효모를 상용화하고, 토종 유산균과 결합한 발효종 상미종으로 국제 특허를 취득했다. 

파리바게뜨는 파란라벨을 중심으로 건강 트렌드에 맞춘 브랜드 확장을 시도 중이다. 최근엔 저당, 고단백, 식물성 기반 제품으로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건강 고민에 따라 상품군을 분류해 매장 내 동선과 진열 구조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적용이 아닌,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유통 설계로 해석된다. 매장 직원 교육 역시 건강식 트렌드와 상품 철학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돼, 오프라인 접점에서도 브랜드 철학을 일관되게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고객 니즈에 최적화된 퀵커머스 서비스를 탑재한 모바일 어플 ‘우리동네 GS’. GS25 제공

편의점 GS25 역시 단순한 판매 채널을 넘어, 제품과 브랜드, 고객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GS25는 프랑스 디저트 브랜드 ‘밀레앙’과의 협업으로 고급 디저트를 편의점 유통망에 도입하며 디저트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또한, 장애인 고용을 위한 ‘늘봄스토어’ 운영, 업계 최초의 리필스테이션 설치 등 사회적 가치와 친환경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처럼 GS25는 상품 기획에서부터 브랜드와 소비자 관계, 사회적 파급 효과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편의 유통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신뢰를 쌓는 리테일, 경험으로 유통을 설계하다

브랜드의 품질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도 유통계의 고민이다. 이에 소비자와의 접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신뢰 형성의 핵심이 됐다. 유통은 이제 물건을 판매하는 과정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경험 설계로 전환되고 있다. 반복적 신뢰를 중심에 둔 리테일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성수동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 씰리 아뜰리에 전경. 씰리침대 제공

글로벌 매트리스 브랜드 씰리침대는 체험 기반 유통 전략을 통해 고객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1881년 미국에서 출발한 씰리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매장을 운영하며, 한국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표 기술인 ‘포스처피딕(Posturepedic)’은 정형외과 전문의와 공동 개발한 압력 분산 기술이다. 씰리코리아 자체 조사에 따르면 실제 사용 고객 10명 중 8명이 허리 통증 완화 효과를 체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수동 팝업스토어 '씰리 아뜰리에'에는 2주간 5000명 이상이 방문해 매트리스를 직접 체험했다. 해당 매장은 단순 홍보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기술력을 소비자 경험으로 전환한 실험적 공간으로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씰리는 최근 팝업스토어를 통해 오프라인 리테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제품 전시뿐 아니라 수면 전문가와의 상담, AI 기반 수면 분석 장비를 함께 배치해 고객 참여형 경험을 설계했다. 또한 주요 백화점 내 매장에서도 고객이 매트리스의 단면을 직접 확인하고 눕는 구간별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리뉴얼을 진행 중이다.

롯데렌터카 서울역지점 전경. 롯데렌탈 제공

모빌리티 유통에서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설계는 유효하다. 롯데렌탈은 장기렌터카 시장 점유율 1위(2023년 약 31.5%)를 기록하며, ‘마이카’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의 이동 경험 전반을 설계하고 있다. 마이카 자유반납형, 인수형, 단기형 등 상품군 세분화와 함께, 계약부터 반납까지 전 과정을 앱 기반으로 자동화했다. 지난 2023년 기준 앱 사용자 수는 150만명을 돌파했고, 고객 재이용률은 72%다. 특히 마이카 자유반납형은 1년 단위로 차량을 교체할 수 있는 구조로, 빠른 주기의 차량 교체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비용 부담을 줄였다. 이처럼 차량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량 이용 전반을 하나의 생활 동선으로 설계한 점에서 유통의 진화를 보여준다.

롯데렌탈은 단기 렌트 중심에서 탈피해 고객의 이동 목적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단기 수요와 장기 계약 사이에 놓인 사용자 니즈를 상품군으로 정교하게 분리한 점, 그리고 실시간 차량 배차와 유지관리 정보 제공 시스템은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렌탈 서비스의 전 과정에 설계와 데이터 기반 운영을 접목하며, 기술 중심이 아닌 ‘이용 중심’의 유통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에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포함한 스마트 모빌리티 전환에 맞춰 새로운 상품 구조도 마련할 계획이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소비자 사이에서는 최근 ‘내 차’라는 개념보다 합리적이고 편리한 이용 경험을 더 중시하는 트렌드가 생겼다”며 “이를 반영하여 고객이 자신의 경제 상황이나 차량 이용 패턴을 고려해 장기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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