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는데, 원래도 소원을 들어주는 동화 속의 금물고기처럼 뭐든 내게 척척 해주던 엄마도 이젠 진짜 물고기가 된 거라고... ‘엄마가 치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는 머리칼 세듯 금빛이 세어 어느새 은빛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좀 덜 슬펐고 엄마는 여전히 예뻤다.
하루는 그런 엄마에게 어항을 놓아드렸다. 어쩌면 적적한 엄마는 3초마다 새롭게 금붕어를 반가워하실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금붕어는 곧 혼탁해진 물속에서 모조리 배를 뒤집고 죽어버렸다. 모든 걸 금세 잊는 엄마가 물고기 밥을 준 걸 잊고, 자꾸 또 줬기 때문이었다. 어항을 치우며 나는 엄마가 나도 3초 만에 잊을까 슬펐지만, 우리 엄마는 또 3초 만에 다시 나를 사랑할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구순이 넘어 점점 젊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 나이를 물었을 때, 그새 내 나이만큼 젊어져 있던 엄마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다 울먹이셨다. 당신은 그대론데, 이상하게도 훌쩍 늙어버린 딸을 몹시 짠해 하셨다. 엄마의 귀가 더 어두워진 게 먼저인지, 엄마의 정신이 더욱 흐려진 게 먼저인지,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하게 된 뒤에도 나는 엄마에게 종종 나이를 물었다. 치매가 걸리고도 기적처럼 매일 우리를 알아봐 주시는 엄마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질문 중 엄마가 금세 반응하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대답은 늘 엉터리였다. 엄마의 나이는 시간이 갈수록 적어졌다. 전에는 ‘한 팔십 세쯤’이라고 하셨다가, 그 뒤엔 ‘일흔 살이 넘었다’고 하셨다가, 나중엔 ‘예순 두세 살 되었을 거’라고 답하셨다. 처음엔 기억을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의 대답을 고쳐드리지 않았다. ‘젊게 사는 게 뭐 어때서! 우리 엄만 점점 젊게 사시는 것’이라고 내 자신에게도 우겨댔다. 그리곤 더이상 엄마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다. 엄마가 나날이 젊어지는 건 좋지만 딱 거기까지가 좋아서였다. 이제는 나와 친구가 되어 나와 엇비슷하게 살다 갈 수 있을 그 나이까지가 좋았다.
최근 엄마는 거의 말을 안 하신다. 나를 보면 한없이 반가워하고 음식도 내 앞으로 밀어주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진짜 물고기가 된 듯 입만 뻐끔거려 의사를 전하신다. 크게 말해보라고 성화를 해도, 말하는 걸 잊으신 건지, 아님 당신 목소리가 당신 귀에도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엄마의 목소리를 키우기는 어렵다. 그러다가도 내가 등이 간지러워 혼자 긁으려 들면 얼른 내 등을 긁어주는 엄마에게 나는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엄마는 그 말만은 찰떡같이 받아서 ‘나도 사랑해’하고 크게 답하신다. 고맙다는 말에도, 죄송하단 말에도 아무 기색 없다가, 사랑한단 말에만 답을 하는 엄마를 보면 엄마는 평생 사랑밖엔 모른다.
오래전 한 음악회에서 오백 년도 더 된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많이 울었던 적이 있다. 음악도 명곡이었고 연주도 훌륭했지만 내가 울었던 이유는 그 악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저 오래된 나무 조각에 불과했을 그 바이올린이 세월과 함께 명기로 남은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약해져 빛을 발하는 ‘사람’이란 존재는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어찌해야 사람도 저 바이올린처럼 세월과 함께 더 빛날 수 있을지, 부모는 무엇으로 계속 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였다. 이미 아버지는 오랜 투병 중이셨고 엄마는 치매가 깊어진 때였다. 그리고 명기를 증명하는 것이 그것을 갈고닦은 뛰어난 연주자라면, 부모의 이름을 규정하는 건 훌륭한 자식일 텐데 나는 여전히 시시하고 보잘것없을 때였다.
그날의 통곡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내 부모를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억뿐이다. 더 오래 더 많이 내 부모를 되새기는 것뿐이다. 나를 떠나셔도 나를 잊으셔도 ... 때로 상처에는 망각이 위로가 되겠지만, 존재는 기억으로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부모는 그러지 않을까, 나의 기억이 당신들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진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 시공을 넘어 서로 닿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