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경구투여 치료제가 국내 제약사들의 주가를 흔들었다.
9일 유럽의약품청(EMA)은 성명을 내고 “회원국들이 빠른 시일 내 MSD의 몰누피라비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검토중이다”라고 밝혔다. 몰누피라비르는 이달 4일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으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사용 승인 여부를 심사 중이다.
앞서 5일에는 화이자도 경구투여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소식을 알렸다. 화이자의 치료제는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로 개발된 팍스로비드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로 쓰이는 ‘리토나비르’와 혼합 투여하는 방식이다. 화이자는 곧 FDA에 사용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MSD와 화이자의 연이은 발표에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미끌어졌다. 알약 형태의 치료제가 코로나19 대응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그동안 백신과 치료제 개발 및 위탁생산(CMO)으로 주목을 받았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기대감이 식는 분위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5일 25만7000원으로 장을 마감했지만, 8일 종가는 14.2%(3만6500원) 떨어진 22만500원을 기록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으며, 합성항원 기술을 적용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5일 종가는 86만4000원이었지만, 8일 종가는 82만3000원으로 4.7%(4만1000원) 하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의 완제 공정을 맡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 가운데 mRNA 백신 CMO를 수주한 첫 사례였다.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개발하는 셀트리온의 주가도 타격을 입었다. 5일 셀트리온의 종가는 20만9000원이었지만, 8일에는 이보다 5.7%(1만2000원) 하락한 19만7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는 병원에서 의료진의 도움으로 투약할 수 있는 정맥주사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며, EMA에서는 아직 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경구투여 치료제 유용성 상당… 확보 경쟁 가능성
몰누피라비르와 팍스로비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크다. 두 치료제는 각각 임상시험을 통해 코로나19 환자의 중증화 및 사망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 이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백신 확보·분배에 차질을 경험한 정부가 일찌감치 물량 확보에 나서는 양상이다.
정부는 앞서 9월 MSD와 몰누피라비르 20만명분, 10월 화이자와 팍스로비드 7만명분에 대한 구매약관을 각각 체결했다. 아울러 이달 중으로는 13만4000명분에 대한 구매계약을 추가로 맺어 총 40만4000명분의 경구투여 치료제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고재영 질병관리청 대변인은 “내년 2월부터 국내에 경구투여 코로나19 치료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MSD가 이달 1일 공개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몰누피라비르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입원 및 사망 위험을 약 50% 감소시켰다. 몰누피라비르를 투여 받은 환자 가운데 29일 내 입원하거나 사망한 비율은 7.3%였지만, 위약 투여군은 14.1%로 약 두배가량 높았다. 아울러 시험 참가자 중 몰누피라비르 투여군에서는 사망이 보고되지 않은 반면, 위약 투여군에서는 8명이 사망했다.
팍스로비드 역시 환자의 사망을 막는 효과가 확인됐다. 화이자가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경증 및 중등증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 증상 발현 사흘 내 팍스로비드를 복용한 사람의 0.8%만 입원이 필요한 상태로 증상이 진행됐다. 치료 후 28일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위약 투여군의 입원율은 7%로 집계됐으며, 사망자는 7명 발생했다.
경구투여 치료제가 단계적 일상회복에 필수 준비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알약 형태의 치료제는 그동안 활용된 코로나19 치료제와 달리 복용 편의성이 높아 환자들의 증상 조절을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원장은 “경증 환자를 조기에 치료하는 데 집중하고, 재택치료를 도입하는 등 ‘위드코로나’로 이행하는 과정에 경구투여 치료제의 유용성이 높다”며 “지난해부터 각국 정부들이 백신을 조기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질타를 받는 사례가 흔했던 만큼, 치료제를 두고 각국의 확보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부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