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와 휴젤 등 그동안 업계를 주도해 왔던 기업들이 연이어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당했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와 벌였던 해외 법정공방을 마무리했지만, 아직까지 국내 소송에 따른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휴젤, 인수합병 마무리 중 허가취소 봉변
휴젤의 대표 제품 ‘보툴렉스주’가 국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휴젤이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제품을 국내에 판매했다며 △보툴렉스주 △보툴렉스주50단위 △보툴렉스주150단위 △보툴렉스주200단위 등에 대한 품목허가 취소 및 회수·폐기 조치에 착수했다.
제약사는 백신, 혈액제제, 보툴리눔톡신 등 생물학적 제제를 판매하기 전, 식약처로부터 제조·품질관리 사항을 검토받고 국가출하승인을 얻어야 한다. 수출 전용 의약품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내수용 제품은 국가출하승인이 필요하다.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수출용 제품의 국내 판매는 불법이며, 국내 도매상에 판매하는 행위도 적발 대상이다.
휴젤은 식약처가 수출용 제품에 내수용 원칙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감행했다고 해명했지만, 식약처 관계자는 “수출용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휴젤은 제품 사용중지 조치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소송을 통해 허가취소 처분도 무효화할 계획이다.
기업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도 크다. 휴젤은 현재 GS컨소시엄과 1조7200억원 규모의 인수합병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어, 대표 제품의 허가취소 행정처분이 악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휴젤은 올해 3월 보툴렉스주 허가취소 위기 의혹이 불거지자 입장문을 내고 “악의적인 명예훼손성 허위보도에 대해 강경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부인했다. 하지만 8개월 만에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상황이다.
휴젤 측은 “즉각적으로 식약처 조치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판매 및 사용 중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진행해 영업과 회사 경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조속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살아남은 메디톡스, 영향력은 대폭 하락
휴젤에 앞서 메디톡스도 핵심 제품 ‘메디톡신’ 허가취소 위기를 겪었다.
식약처는 지난해 6월 무허가 원액 사용 혐의로 메디톡신의 허가취소 처분을 발표했다. 이어 10월에는 추가로 메디톡신과 ‘코어톡스’에 대한 허가취소를 발표했다. 당시 처분 이유는 휴젤과 마찬가지로 국가출하승인 원칙 위반이었다. 12월에는 안정성시험 자료 위조 혐의로 ‘이노톡스’에 대해서도 허가취소 처분을 냈다.
메디톡스는 허가취소 처분을 무효화하기 위해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이들 제품이 품목허가를 잃은 것은 아니다. 식약처의 처분 발표 직후 메디톡스가 법원에 신청한 집행정지가 인용되면서, 제품들은 지금도 계속 국내에서 판매·사용되고 있다.
시장에 잔류했지만, 영향력은 줄었다. 식약처가 발표한 국내 의약품·의약외품 생산, 수출 및 수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메디톡스는 앞서 2019년 1171억원의 생산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세 차례 허가취소 처분을 받은 지난해에는 생산실적이 738억원에 머물렀다. 한해만에 실적이 평년 대비 37% 떨어졌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지난해 받았던 품목허가취소 행정처분은 모두 취소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판매·사용 중지 조치 역시 집행정지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행정처분이 발표된 이래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품 생산, 판매, 사용 전 과정이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 ‘독주 체제’… 법정공방 리스크 남아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메디톡스와의 소송전이 과제로 남았다.
나보타의 매출은 올해 3분기 20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실적은 113억원이었다. 주요 경쟁 상대였던 휴젤의 보툴렉스주가 당분간 사용중지되고,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코어톡스·이노톡스 등의 실적이 부진한 만큼 나보타가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양상이다.
다만, 대웅제약은 법정공방 리스크를 품고 있다. 메디톡스와 보톡스 균주 기술도용 의혹을 두고 2017년부터 미국과 국내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메디톡스의 고유한 보톡스 균주 기술을 대웅제약이 부정한 방법으로 빼돌렸다는 것이 메디톡스 측 주장이다.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 시장 진출을 방해하기 위한 계략이라며 메디톡스 측 주장을 전면 부정해왔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소송은 최근 대웅제약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올해 1월 대웅제약의 균주 기술 도용 혐의를 인정,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에 대해 대웅제약은 2월 연방항소순회법원(CAFC)에 항소했으며, 지난달 28일 최종적으로 ITC의 판결이 무효화 됐다.
국내에서는 민사 소송 1건, 형사 소송 1건을 진행 중이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대웅제약이 국내 소송에서 패소하면 도용한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나보타의 품목허가는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대웅제약은 승소를 확신하고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미국 ITC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국내 민·형사 법원과는 판결 기준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존 ITC 판결이 국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공개된 타 기관의 조사 내용을 법원에서 참고 자료로 보는 것은 어느 사건이나 법적으로 당연한 것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