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해외파들의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해외파들에게 K리그는 선수 말년을 보내는 마지막 리그에 가까웠다. 젊었을 때 K리그 무대에서 실력을 쌓은 뒤 해외로 떠나고, 커리어 황혼기에 K리그로 다시 돌아와 2,3년을 소화하다 은퇴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았다.
2022 한·일 월드컵 주역인 설기현 현 경남FC 감독은 해외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내다가 2010년 포항으로 이적한 뒤 울산, 인천 등을 거쳐 은퇴했다. 차두리 역시 해외에서 활약하다 서울에서 3년을 뛰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박지성 전북 어드바이저와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는 국내에서 뛸 수 있는 팀을 찾지 못하고 해외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해외에서 한창 활약하던 선수들이 이르면 30대 초반에 K리그로 돌아오고 있다. K리그가 아시아 리그 중에서 상위권 리그에 속하고, 환경이나 대우가 좋아 선수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각광받고 있다.
2020년에 복귀한 ‘쌍용’ 이청용(울산 현대)과 기성용(FC서울)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중후반 FC서울에서 활약하다 해외 무대로 떠났던 이들은 신체 전성기인 30대 초반에 K리그로 돌아왔다.
기성용은 이적 당시 “외국에서 더 뛰고 한국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그림이지만, 팀과 리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K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만 K리그 팬들에게 그라운드 위에서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이른 결정을 택했다.
두 선수의 영향력은 곧바로 소속팀과 리그로 퍼졌다. 이청용은 울산의 중심을 잡으며 전북 현대와 선두 경쟁을 펼쳤고, 기성용은 하위권에 쳐진 서울에 자극을 주며 팀을 중위권까지 끌어올렸다.
20대 초반에 크리스탈 팰리스, 위건 애슬래틱 등 영국과 일본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던 김보경은 30대 초반 K리그 무대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9년 울산 현대로 임대 이적 후 35경기 출전 13골 9도움을 기록하며 시즌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이후 전북 현대로 이적해 2년 연속 우승에 일조했다.
올 시즌 중반에는 선덜랜드, 독일 분데스리가 FC아우크스부르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V다름슈타트98, FSV마인츠05 등에서 활약한 지동원도 K리그로 리턴해 눈길을 끌었다.
해외에서 데뷔를 해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도 국내 무대를 밟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백승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해 스페인 지로나,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뛰던 백승호는 지난 3월 전북에 입단했다. K리그에서 뛴 적이 없던 백승호는 올해 처음 K리그 무대를 밟았다. 시즌 초반에는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5경기에서 4골을 올리면서 전북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했고, 우승에 일조했다. 이같은 활약에 힘입어 약 2년 만에 대표팀에 다시 승선하기도 했다.
이승우와 김영권도 뒤를 이었다. 수원 FC는 이달 초 이승우를 영입했다. 지난 19일에는 울산이 김영권을 품었다. 두 선수 모두 커리어 처음으로 K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2011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한 이승우는 이탈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등을 전전하다 K리그행을 결정했다. 이승우는 최근 신트 트라위던과 계약 해지 후 중동, 미국 등 많은 리그에서 오퍼를 받았지만 K리그 도전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족들과 편안하게 같이 있으면서 (축구를) 하고 싶었다. K리그에서도 뛰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 많은 선택지를 고려해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언급했다.
김영권 역시 FC 도쿄, 오미야 아르디자(일본),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감바 오사카(일본) 등 주로 일본과 중국 무대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다 K리그 무대를 밟았다. 김영권은 구단을 통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에 울산행을 결정지었다. 한국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싶었고, 자신감이 있었기에 울산행을 결정지었다”고 K리그행 이유를 밝혔다.
한편 해외파 선수들이 하나둘씩 K리그 무대를 밟기 시작하면서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 경기나 해외 중계로만 보던 선수들이 대거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더 자주 이들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많은 해외파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K리그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다음 시즌은 재밌는 시즌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