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아이돌’. 2015년 데뷔해 2021년 해체한 그룹 소나무는 운이 따르지 않은 팀으로 유명하다. ‘데자부’(Deja vu), ‘넘나 좋은 것’, ‘나 너 좋아해?’ 등 숨은 명곡이 많지만, 7년 중 3년을 음반 활동 없이 흘려보냈다. 당시 소속사였던 TS엔터테인먼트가 소속 연예인과 잇단 분쟁을 겪으면서다. 멤버들은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소나무는 실패했다고. 소나무 멤버로 7년을 보낸 홍의진은 고개를 저었다. “경험이 남았어요. 그 나이에 해보기 어려운 일들을 저는 겪어봤고, 그로 인해 얻은 것도 있어요.” ‘8년차 신인가수’로 새 출발을 앞둔 홍의진을 12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 어떻게 지냈어요?
“작년 생일(10월9일)에 맞춰 온라인으로 팬미팅을 했어요. 오랜만에 무대에 선데다, 혼자서 여러 곡을 부르는 공연은 처음이라서 고민이 많았어요. 너무 긴장한 채로 공연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다음에 더 잘하려고요.”
- 솔로 음반도 준비하고 있죠?
“네. 솔로 음반은 처음이라서 어떤 콘셉트가 좋을지 고민하는 단계예요. 혼자서 음반을 채워야 하니 꾸준히 보컬 수업을 받고 있고요,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려면 몸 관리도 중요해서 운동도 열심히 해요. 저 자신에 집중할 시간이 많아졌어요.”
- 인터뷰 주제가 ‘2의 해를 맞은 사람’이에요. 의진에서 홍의진으로, 두 번째 이름을 갖게 된 인물이라 초청했어요.
“제 이름이 흔한 편은 아닌데, 저와 같은 이름을 쓰는 다른 아이돌(그룹 빅플로 출신 의진)이 계셔서 풀 네임을 쓰기로 했어요. 예명을 쓸까 고민도 했는데, 의진으로 활동한 시간이 길어서 본명을 쓰는 게 낫겠더라고요.”
- 의진으로 사는 동안 여러 도전을 거쳐 왔죠. 첫 도전은 아마도 기획사 오디션이었을 거고요.
“13세 때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본 게 첫 오디션이었어요. 마냥 신기했죠. ‘와, 서울이다!’ ‘오디션이다!’ 유명한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제겐 큰 자랑거리였어요. 이후로도 당시 다녔던 댄스 학원에서 연결해준 오디션들을 몇 번 더 봤고요.”
- 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서 최종 단계까지 올라갔다고 들었어요. 탈락한 뒤에 의기소침해지진 않았어요?
“네. 부모님 덕분에요. 부모님이 늘 ‘최선을 다하되, 그래도 안 되면 네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담담하게요. 저를 믿고 계시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큰 힘을 얻었어요.”
- 16세에 연습생이 됐고 4년 뒤 데뷔했어요. 소나무로 활동한 시간은 뭘 남겼나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흔치 않은 경험을 했죠. 리더십을 발휘해보기도 하고, 욕심도 부려봤어요. 그러면서 다른 일에 도전할 끈을 얻기도 했고요. 이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 기분을 빨리 알아차리게 됐어요. 눈치보고 배려하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요.”
- 다른 사람들 기분을 살피다보면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에 무감하게 되죠.
“맞아요. 그래서 2년 전에 ‘나를 알아가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휴대폰 메모장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써보면서 느꼈는데, 저는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제가 싫었어요. ‘난 왜 이렇게 애매모호하지?’ 하면서. 지금은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새로운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 소나무로 활동하던 2017년에 KBS2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유닛’에 출연해서 그룹 유니티 멤버로 뽑혔어요. 그 땐 어땠어요?
“저를 시험해보고자 도전한 프로그램이에요. 팀 안에선 제 역할이 정해져 있으니 자꾸 안일해지는 것 같았거든요. 제 실력이 (다른 그룹 멤버들과 견줘)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어요. 신기하게도, 소심하던 제가 저 자신을 뽐낼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치열한 경쟁을 거쳐 내면이 단단해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 유니티 활동을 마치고 소나무로 복귀했지만 원하던 대로 활동하지는 못했죠?
“아빠가 사주를 볼 줄 아세요. 도대체 언제쯤 잘 풀리겠냐고 물었더니, 2년 뒤에 잘 된대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봤어요.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상 편집도 공부하고, 외국어도 배우고….”
- 영상 편집은 어쩌다 배우게 됐어요?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수업도 듣고, 이력서도 올려보고, 기업에서 연락도 받아봤어요.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관련 기술을 배웠거든요. 선생님이 지인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히 두 작품에 참여했어요. 처음으로 돈도 벌고요. 그때는 가수를 그만 둘 생각도 하던 때라 열심히 기술을 배워서 직업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 아르바이트는 어디에서 했어요?
“레스토랑에서요.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근무지가 서울 청담동에 있었거든요. 나를 아는 기획사 관계자가 손님으로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만 있을 순 없어서 시작했는데, 좋았어요. 첫 월급으로 아빠 지갑도 사드렸고요.”
- 데뷔 후 처음으로 또래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겠어요.
“맞아요. 데뷔 초엔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했거든요. 빨리 직업을 찾았다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저는 오히려 붕 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고민도 해보고, 그러면서 각자 자신만의 힘듦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아요.”
- 그리고 마침내 무대로 돌아왔네요. 무엇에 이끌렸나요?
“무대가 그리웠어요. 사람들이 보내주는 환호가 다시 듣고 싶었고요. 그전에도 유튜브에 다른 가수들 노래와 춤을 따라한 영상을 올렸지만, 채워지지 않았어요. 내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 두렵진 않았어요?
“저는 이미 부딪쳐봤잖아요. 설령 이 길이 내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굳센 믿음이 생겼어요. ‘해서 안 되면 말고’라는 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야죠. 다만 적어도 도전이 두렵지는 않아요. 지나온 시간 덕분에요.”
- 여전히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예뻐해 줬으면 좋겠어요. 자존감이 떨어지면 그런 생각 들잖아요, 뭘 해도 안 될 것 같고, 나는 고작 이 정도뿐인 것 같고…. 그럴 때일수록 내가 뭘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문득문득 느끼는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어요. 결국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