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아이돌이 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남자’, ‘전 세계를 사로잡은 월드 스타’, ‘결점 없는 음악 천재’. 완벽할 것만 같던 그에게는 남모를 고충이 있다. 떨쳐낸 줄 알았던 몽유병이 재발한 걸 안 순간부터 그는 전전긍긍했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이를 치료해야 한다. 불안감을 안고 사느라 예민하고 까칠하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냉랭한 그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그는, SBS ‘너의 밤이 되어줄게’에 등장하는 아이돌 밴드 루나 리더 윤태인이다.
윤태인을 연기한 그룹 유키스 출신 배우 이준영은 시놉시스를 보곤 금세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준영은 윤태인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며 곧장 반색했다. 그는 KBS2 ‘이미테이션’에 이어 연속으로 아이돌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출연했다. 노래도 부르고 연기도 할 수 있어 기뻤단다. 그에게 ‘너의 밤이 되어줄게’는 선물 같은 추억으로 남았다.
“드라마가 아니라면 제가 언제 또 밴드를 해보겠어요. 정말 신났어요. 윤태인은 냉철했던 모습에서 변화를 맞는 인물이에요. 그 과정을 연기로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어요. 촬영이 계속될수록 저 또한 위로를 얻었죠. 제게 ‘너의 밤이 되어줄게’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같아요. 시청자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요.”
고달픈 순간도 있었다. 밴드의 메인 보컬인 윤태인을 표현하기 위해 기타를 배우고 노래 실력을 갈고닦았다. “무식하게 열심히만 했더니 손에 물집이 잔뜩 생겼었다”며 소탈하게 웃던 그는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덕분에 방영되는 동안 루나 노래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유키스로 활동하던 이준영의 과거 모습도 재조명됐다.
“(윤)태인이와 저는 맡은 일을 잘 해내려는 모습이 비슷해요. 하지만 저는 ‘천재 아이돌’은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보니 태인이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알겠더라고요. 제 모습을 끌어와 연기해야겠다 싶었어요. 기쁠 때도 있었어요. 저는 아이돌로 데뷔했잖아요. 제가 했던 일들이 드라마로 그려지는 게 자랑스러웠어요.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요.”
이준영은 윤태인이 줄곧 안쓰러웠단다. 그에게 윤태인은 완벽한 이면 속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힘든 일도 홀로 이겨내려는 모습은 그의 마음에 콕 박혔다. ‘너의 밤이 되어줄게’에 출연한 것도 윤태인이 눈에 밟혀서다. 이준영은 “윤태인의 아픔이 내 손을 잡더라”면서 “가수를 연기하는 것도, 성장형 로맨스인 것도 좋았다”며 씩 웃었다. 연기도, 노래도 그에겐 소중하다.
“연기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매 순간 자신을 의심해야 해서 재밌어요.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매력이라고 할까요? 현장 상황과 그날 감정에 따라 모든 것들이 바뀔 때면 짜릿해요. 무대는 연기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노래를 마치고 팬분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여전히 그 황홀함을 간직하고 있죠. 무대는 언제나 제게 소중한 곳이에요. 제가 지금껏 활동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5년 전 tvN ‘부암동 복수자들’의 ‘수겸 학생’으로 주목받고 차근히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지난해 넷플릭스 ‘D.P’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준영은 넷플릭스 ‘모럴 센스’와 웨이브 ‘용감한 시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엔 언제나 노력이 함께했다. “역할에 맞는 얼굴을 찾으려 해요. 행동, 습관도 만들려 하죠. 이번에도 남들이 생각하는 윤태인이 아닌, 저만의 윤태인을 만들려고 매 순간 애썼어요.” 진지하게 말을 잇던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꿈을 묻자 다부진 답이 돌아왔다. 이준영은, 천의 얼굴을 꿈꾼다.
“그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왔어요. 지칠 때도 있지만 매 작품이 끝날 때면 제가 한 단계 성장해있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많은 걸 배우고 깨달을 거예요. 그걸 토대로 역할마다 달리 보이는, 여러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니, 순수함도 잃고 싶지 않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쌓다 보면, 수겸 학생을 잇는 또 다른 인생 캐릭터도 만나지 않을까요? 그 순간이 기대돼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