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파 병원에 간 A씨는 간호사에게 실손보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간호사는 보험사 별 보장내역이 정리된 표를 보고 해당 보험의 보장금액에 맞게 도수치료 10회권을 끊었다. A씨는 ‘컨설팅’을 받은 것이다.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3월 말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한다. 당국은 보험협회, 보험사, 보험개발원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TF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요 비급여 항목은 백내장 수술, 갑상선 고주파 절제술, 도수치료다. 이 항목들은 과잉 진료가 빈번해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범으로 꼽혀 왔다.
갑상선 수술받은 고객이 실손보험금 청구를 하면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과잉 진료 여부를 묻도록 할 계획이다. 백내장은 교정 목적의 수술일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다만 수술이 치료 목적이었는지 교정 목적이었는지 판단 기준을 정확히 세우진 못했다. 도수치료에 대한 보험금은 기본적으로 지급하되, 일정 횟수 이상부터는 의료진으로부터 도수치료가 꼭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 밖에 ▲하이푸(고강도 집속 초음파) ▲맘모톰 ▲비밸브재건술(코) ▲양악수술·오다리·탈모 ▲비급여약제 ▲재판매가 가능한 치료재료(피부보호제) 등 총 9개의 비급여 항목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가입자가 3900만명에 달해 국민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세부 기준이 없다. 병원들이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의료비를 공시하도록 한 것이 전부다. 현재 소수의 가입자가 과잉 진료로 상당액의 보험금을 타가면 이에 따른 손실액을 다수의 가입자가 메우고 있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적자를 이유로 올해 보험료를 평균 14.2% 인상했다.
소비자들은 비급여 항목의 지급 기준이 강화되면 실손보험금 청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보험을 가입할 때 없던 항목들을 보험금 신청 후에 만들어 놓고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고 하면 약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백내장 거의 많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다. 어떤 수술을 할 건지 본인의 판단”이라면서 “보험사와 금융위원회의 판단을 받고 치료해야 하나. 다 된다고 홍보해 판매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짓이냐”고 분노했다.
소비자가 과잉 진료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치료일 경우 병원의 말만 믿고 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소비자는 “의사 말만 믿고 치료받았다가 나중에 과잉 진료로 밝혀져 보험금 지급이 안 될 때 소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항목의 지급 기준이 강화된다고 해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건 아니다. 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건수에 대해서 치료 목적을 증명하는 자료를 받겠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약관에 없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험금 지급이 오래 걸리거나 추가 서류를 떼야 하는 등 소비자가 불편해질 순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과잉 진료로 인한 누수를 막기 위해 당국에서 대처를 마련한 건 의미가 있다. 다만 이에 따라 실제 보장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기준을 세밀하게 짜야 한다”라면서 “아토피 등 피부염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보습제 MD크림을 비싼 가격에 되파는 등 악용이 늘자 비용 청구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진짜 치료를 목적으로 구매했던 소비자들이 손해를 봤다. 실손에서 비슷한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기준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