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달러가 단 일주일 만에 2센트가 됐습니다. 한때 시가총액 7위까지 올랐던 코인 ‘루나’ 얘깁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가 발행한 테라와 루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상화폐의 단점은 변동성이 큰 겁니다. 주식과 다르게 단 몇시간 만에 가격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죠.
이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코인 ‘테라’입니다. 1달러에 연동하도록 설계했죠. 테라에 투자하면 언제든지 1달러만큼의 가치를 주겠다는 겁니다.
테라뿐만 아니라 테더, USDC 등 1달러와 연동된 코인을 ‘스테이블코인’이라 합니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달러와 연동해 1달러의 가치를 늘 유지하려고 합니다.
가치를 유지하려면 담보가 필요합니다.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죠. 테라는 담보로 또 다른 코인 루나를 발행했습니다.
예컨대 테라가 1달러보다 떨어진 0.98달러라면, 투자자는 이 테라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0.02달러의 차익을 보는 것이죠. 이때 테라가 소각됩니다. 테라의 수량이 줄면서 화폐수량설에 의해 테라의 가격은 다시 1달러로 상승하죠. 반대로 루나의 수량은 늘어납니다.
반대로 테라가 1.02달러로 1달러보다 커진다면, 루나를 가진 투자자가 테라로 교환합니다. 투자자는 0.02달러의 차익을 보죠. 이때 루나가 소각됩니다. 테라의 수량이 늘면서 가격은 1달러와 가깝게 하락합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통화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의 공급을 조절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통화의 가격이 너무 높을 때 중앙은행은 통화의 추가 발행을 통해 시중 통화의 공급량을 증가시킵니다. 수요가 일정할 때 공급이 증가하면 균형가격은 하락하죠. 테라 또한 가격 안정성 달성을 위해 공급을 조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겁니다.
테라폼랩스는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대출 프로토콜 앵커를 운영했습니다. 테라(UST)를 이 프로토콜에 예치하면 연이자로 약 20%를 지급했죠. 이자는 현금 대신 UST로 지급됐습니다.
20%의 고정금리를 노린 사용자가 폭증하면서 앵커의 예치금이 대출 수요보다 커졌습니다. 사용자가 대출을 활발히 해야 예치에 대한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데, 대출 수요보다 예치 비중이 높아진 거죠. 테라폼랩스는 18.03%로 이율을 내렸지만 부담은 여전히 컸습니다.
테라폼랩스는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 재단을 설립해 UST가 고정 금리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 비트코인을 팔아 이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UST가 1달러 밑으로 내려가자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예치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일어났습니다. 비트코인만으로는 이를 버티기에 역부족이었죠.
설상가상 루나의 가격도 내려가면서 알고리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UST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바꿀 수 없게 된 거죠. 이 때문에 테라의 매도세가 루나 매도로, 루나의 매도가 테러의 매도로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이전에는 테라가 0.9달러로 내려가더라도 바로 1달러로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발 금리 인상과 자산 시장 위축이 UST 디페깅 현상이 맞물리면서 이번 사태를 키웠습니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긴축을 하면서 달러만 초강세인 상황입니다. 준기축통화라고 하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까지 모두 약세죠.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가상화폐 시장에는 투매가 나타났습니다.
테라폼랩스는 대량 발행한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유통량을 줄이고, 테라의 가격을 올리려 했지만 루나 가치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테라와 루나를 동반 투매하면서 대량 인출로 이어진 것이죠.
이에 따라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테라와 루나를 상장폐지 했습니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7일부터 폐지합니다. 글로벌 대형 거래소인 OKX는 이미 테라를 상장폐지하고 테라와 연계된 루나, 앵커, 미러 등도 퇴출했습니다. 싱가포르 거래소 크립토닷컴 또한 루나, 앵커, 미러의 거래를 중지시켰습니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는 20일 오후 12시부터 루나 거래를 중단한다고 공지했습니다. 빗썸는 27일부터, 고팍스는 16일부터 루나, 테라에 대한 거래 지원을 종료합니다.
테라 기반 운영사들은 다른 블록체인으로 갈아탈 예정입니다. 테라와 파트너십을 맺은 컴투스그룹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메인넷을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테라 프로젝트에 투자했거나 테라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테라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집중되고 있습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