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맥’ 김대호 감독이 광동 프릭스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2021년 DRX와의 계약 만료 이후 1년 만의 LoL 챔피언스코리아(이하 LCK) 복귀다.
김 감독은 LCK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그는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망주를 에이스로 키워낸 바 있다. 뛰어난 육성 능력을 바탕으로 김 감독은 매번 높은 성적을 거뒀고, 2019년과 2020년에는 팀을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김 감독이 부임하는 팀은 항상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핀에서는 경질, DRX에서는 감독직 자격 정지 등 순탄치 않은 지도자 경력을 보낸 김 감독이다.
14일 부천시 한 카페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1년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동안 김 감독은 많은 것을 느끼고, 사고방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동 프릭스를 롤드컵 진출 팀으로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아래는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광동 사령탑을 다시 맡게 돼서 분주한 시간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1년 만에 LCK 무대로 돌아오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1년이라는 긴 휴식 끝에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게 됐다. 많이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하는데, 아직은 좀 긍정적인 감정이 조금 더 앞서는 것 같다.
광동 프릭스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단 광동 프릭스 사무국이랑 많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잠깐의 미팅으로 광동이라는 팀의 풍조가 자유로우면서도 가볍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위해 책임이 따른다고 하면 될 것 같다.
프런트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믿고 능력을 펼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잘 조성해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제한받지 않고 나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선택만큼의 리턴이 없다면 그만큼 아쉬움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유연하게 체제를 잡아간다면 구단과 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결국 프릭스를 선택했다.
새로운 시즌을 위해 어떤 부분을 준비 중인지 듣고 싶다.
일단 선수단이 확정돼야 러프한 구상이라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당장은 어느 한 라인조차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직 선수들의 계약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인데, 본격적으로 스토브 리그가 시작되면 발로 뛰면서 플랜 A와 B를 짜게 될 것 같다. 선수 라인업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수가 영입되는지에 따라 팀의 색깔이 달라지고, 훈련과 운영 방식도 바뀌게 된다. 지금은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고, 그냥 “어떠한 선수와 함께했으면 좋겠다”이 정도 구상은 하고 있다.
유망주 보는 선구안이 뛰어난 편이다. 광동 프릭스 내에서 주목하는 선수가 있는가?
아직 전부 다 면밀하게 검토하진 않았는데, 기존 코칭스태프들에게 ‘불독’ 이태영의 재능과 피지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 어느 정도 하는지 체크해야 할 것 같다.
2021년 DRX와 계약 만료 이후 1년 동안 야인 생활을 했는데, 당시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길게 휴식하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좋았다. 그런데 반년 정도 쉬고 나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지루함이 생겼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걸 안 하는 게 좀 약간 답답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한 번 더 제대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2021년 DRX의 부진의 이유에 대해서는 에이스의 유출 등 다양한 원인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2021 DRX 멤버 5명이 다 신인급 선수였으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제일 큰 문제는 내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자격정지를 당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스프링 경기에 전혀 관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격 정지가 서머 때도 걸쳐져 있어서 초반 스크림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팀의 체급을 올리기 위해선 스크림과 연습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을 감독이 진두지휘해야 한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고3 수험생도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고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격 정지가 풀리자마자 아무 것도 없이 서머 경기를 치러야했다. 아무것도 없고 새로운 멤버들과 단상에 오르다 보니 퍼포먼스를 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이 굉장히 아쉽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프릭스에서는 이를 잘 적용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마치 모의고사도 보지 못하고 수능을 치러야 하는 입장이었을까?
모의고사만 못 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상 1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공부도 못하고 수능을 치르게 된 셈이다(웃음). 공부도 안 시켜주고 갑자기 수능을 치르라고 하면 막막한 것이 당연하다. 스프링 시즌에는 선수들을 파악해 팀 방향성을 잡아나가 전략을 짜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팀의 체급이 커지는 것인데, 이 기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매번 뛰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소속 구단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잡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이 있을까?
매번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서 정말 배운 점은 많다. 우선 DRX의 경우 감독이 전체적으로 선수단을 잘 컨트롤하고 핸들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팀 운영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그리핀의 경우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도 당시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마치 예견돼있던 재난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했다. 그래도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지난달 개인 유튜브에서 “나는 상대방과 상호작용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듣고 싶다.
이러한 기질로 인한 후회는 없었다. 다만 이제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나와 뇌 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 초반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와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내 기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떠한 특정 행동을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이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이전에 나였다면 “너 왜 이렇게 행동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하면서 내가 이해할 때까지 극한으로 상황을 깊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의 범주를 훨씬 넉넉하게 잡고 “그래, 저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수준까지는 온 것 같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조금 가벼운 질문을 해보겠다. LoL 관계자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은 ‘밈(Meme)’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왜 밈이 된 거지?’라고 생각하는 요소가 꽤 많이 있다. 막상 ‘이건 좀 밈으로 썼으면 좋겠다’하는 것은 오히려 주목을 하지 않더라(웃음). 내 기준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부분에 꽂힌 것이긴 한데, 재밌게 써주시고 오랫동안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하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뇌 비비지마’라는 말이 밈화 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사실 날 포함한 주변에서는 굉장히 자주 쓰는 말인데, 뜻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다. 아마 지금도 제대로 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뇌를 비빈다’는 표현은 어떠한 문제점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행위를 뜻한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것조차 혼돈이 생기며 악순환에 빠지는 딜레마 같은 것 말이다. LoL 대회로 예를 들겠다. 만약 우리가 1세트에 완벽한 밴픽을 했는데, 초반 상대방의 정글 인베이드로 에이스를 당했다. 그럼 인베이드가 패배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지해야하는데, 밴픽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 수 있다. 그럼 정말로 좋은 밴픽이 나쁘게 바뀔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뇌가 비벼지는 것의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많은 팬들이 감독님의 무관 탈출을 기원하고 있다
우승은 정말 하고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이번에는 정말 우승과 멀어진 시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계약 만료로 풀리는 선수들이나 혹은 팀 구성원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팀 구성이 바뀌게 될 것 같다.
유망주 위주의 육성 기조 팀을 꾸릴 수도 있고, 광동 프릭스 2·3군이 그대로 올라와 팀을 꾸릴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기인’ 김기인을 중심으로 슈퍼팀을 꾸릴 수도 있다. 아직은 어떻게 팀이 꾸려질 것인지는 알 수가 없고, 이에 따라 세부적인 목표는 달라질 것 같다. 그럼에도 일단 큰 목표는 2023 롤드컵 진출이다.
1년간의 휴식 기간동안 인터넷 방송인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시청자들의 플레이를 사후 분석하는‘맥문철’ 콘텐츠를 즐겨봤다. 감독님의 복귀를 반기지만 방송인 씨맥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다.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웃음). 그래도 일단 먼저 시즌 중에는 당연히 성적에 집중하고, 비시즌 기간 휴가 때는 솔로랭크를 하면서 방송을 켜고 시청자 분들과 소통할 것 같다. 그때는 팬들의 사연을 받아 맥문철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본업에 집중해 성적을 낸다면 사람들도 나의 다음 행보에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를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2년 차에 롤드컵 진출과 LCK 우승을 노리는 안정적인 선수단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완성된 후 부터는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시청자들과 소통 횟수를 조금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전 지도했던 선수들이 롤드컵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인상 깊게 보고 있는 선수는 누구인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는 역시 징동 인텔(JDG)의 정글러 ‘카나비’ 서진혁의 ‘그레이브즈’ 임팩트가 매우 컸다. 용 쪽에서 추격을 당한 상황에서 거리를 살짝 줄 듯 말 듯 줄타기하다가 궁극기, 점멸, ‘빨리 뽑기(E)’를 사용해 상대방을 빨아들여 3대 5 교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카나비는 감각적인 부분과 계산적인 요소가 잘 조화된 선수여서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롤드컵에서 강하다고 생각하는 팀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항상 LCK 팀은 강하다고 생각한다.
2023년 광동 감독으로서의 각오와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아직 팀이 짜이지 않아 어떻게 출발하게 될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팬들 입장에서 굉장히 응원할 맛이 나고 계속 지켜보고 싶어지는 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그런 팀을 만들고 싶다. 계속 열심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감사하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