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현우는 한동안 배우 겸 매니저로 살았다. tvN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메쏘드 엔터테인먼트 매니저 팀장 김중돈. 본업인 연기하랴, 현장에서 연기자를 ‘케어’하랴, 발에 불이 날 정도로 열심히 촬영장을 쏘다녔다. 특별 출연하는 배우들이 현장에 올 때면 대기실을 먼저 찾아가 김중돈이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지난 6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서현우는 “촬영 내내 이게 현실인지 연기인지 헷갈리더라”며 허허 웃었다. 서글서글한 모습이 김중돈과 똑 닮아 보였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제목 그대로 매니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극 중 김중돈은 인간미가 가득한 매니저다. 늘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인물이다. 배우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은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동료이자 친구 천제인(곽선영) 앞에선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묘하게 눈길을 잡아끈다. 서현우 역시 대본 속 김중돈의 인간미에 스며들었다.
“김중돈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잘하려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결여된 느낌이 매력입니다. 사람 사이 관계를 매끄럽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 좋았어요. 매니저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죠. 연예인과 매니저는 서로를 잘 아니까요. 언젠가는 잘 아는 직업을 연기할 날이 올까 했는데, 매니저 역이라는 기회가 온 거예요. 막상 연기해보니까 ‘아, 이거 할 짓 아니구나’ 싶긴 했어요. 하하.”
보는 것과 경험하는 건 천지차이였다. 서현우는 연기하는 내내 매니저의 고충을 십분 느꼈다. 배우 앞에 나서서 그를 포장하고 해명하는 건 전부 매니저 몫이다. 서현우는 “배우로서 익숙한 상황이 매니저로서는 좌불안석이었다. 양쪽 입장을 고려하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면서 “배우 말 한마디에 귀가 쫑긋해지더라”고 회상했다. 새로운 감정을 느낀 순간도 많았다. 1회에 특별 출연한 배우 조여정 에피소드를 촬영하며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심정을 처음 느껴봤단다. 응원하며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다른 역할에선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밖에도 김중돈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극 중 조여정이 캐스팅 불발 건을 알고 분노하자 김중돈이 매니저들에게 “누가 입 놀렸냐”고 소리치는 장면에선 그의 연기가 빛났다.
“그 장면에서 김중돈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 고민해봤어요. 울분이 계속 터져 나왔을 거예요. 육상선수가 달리면서 중력과 싸우듯, 김중돈도 내면에서 치미는 감정과 싸우겠다 싶었죠. 제가 김중돈이 느낄 감정을 100% 느끼고 표현하면 시청자는 그저 관망하는 것에 그쳤을 거예요. 하지만 50~80% 정도라면 시청자가 저와 같은 감정을 향유할 수 있을 거라 봤어요. 저 혼자 느끼고 마는 연기가 아니라, 보시는 분과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거든요. 냅다 우는 사람보다 슬픔을 이겨내려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잖아요. 저 또한 그렇게 시청자 마음을 건드리고 싶어요.”
화면 너머 시청자를 생각하며 연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현우가 택한 건 첫 번째 시청자인 현장 스태프들과의 소통이었다. 감독부터 조명, 촬영, 미술 등 현장 스태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매니저에게 매니저 역할에 대한 자문을 구하진 않았다. “매니저가 힘들게 일한다는 건 많은 배우들이 아는 사실이에요. 제가 익히 아는 고충과 업무 환경을 보다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는 퍽퍽한 현실을 그리기보다는 현직 매니저에게 선물 같은 작품이 되길 바랐다.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지양했어요. 우리 삶에도 극적인 순간들이 많잖아요. 그런 걸 담으며 위로를 주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감독님은 매 회 판타지 같은 요소를 심어두셨죠. 특별 출연하러 온 배우분들도 촬영하며 굉장히 행복해했어요. 그럴 때면 제작진이 된 것처럼 뿌듯하고 좋았어요. 매니저로서 지낸 경험도 색달랐죠. 카메오 배우들이 오면 통성명 전부터 저를 김중돈이라고 소개하며 다가갔어요. 그러면 저희 모두 긴장이 금방 풀리거든요. 결과적으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거죠.”
출연 배우들은 매니저를 연기하고, 실제 배우가 본명으로 자신을 연기하는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한 작품이다. 리허설과 본 촬영 모두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선 기분이었단다. 변영주 감독과 나영석 PD가 등장할 땐 특히나 더 그랬다. 특별 출연한 배우 김주령은 촬영을 마친 뒤 “중돈이 네가 내 매니저면 좋겠다”는 감상을 남겼다. 서현우가 김중돈으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들이다. 매 작품에서 인물에 동화된 연기를 펼치는 그에게 매니저 연기는 신기한 경험으로 남았다.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서현우의 메서드 연기가 조명받기도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과 ‘남산의 부장들’ 속 상반된 이미지가 화제였다는 기자 말에 서현우는 진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보다는 집중하려 해요. 관객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걸 넘어 전이하고 싶어요. 작품에 어떤 식으로 존재할지 고민하죠. 모든 사람은 다양한 개성으로 보편적인 순간들을 살아요. 그걸 연기로 보여드리면 제 캐릭터가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캐릭터가 편안하게 느껴질수록 극적인 대사를 내뱉을 때 신뢰감이 불어나죠. 부담 없이 보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봤으니 함께 잘 나아갈 생각입니다. 매니저와 배우는 한 배를 탄 사이니까요(웃음).”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