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 삭막한 이 도시가 /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 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 4인조 그룹 하이키는 지난 5일 발표한 새 미니음반 타이틀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노래한다. “내가 원해서 여기 나왔냐”는 원망을 접어두고 “악착같이” 살겠다는 다짐이 자신감으로 무장한 요즘 걸그룹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음이 찡했어요. 가사 속 장미를 위로해주고 싶었을 만큼이요.” 컴백을 앞두고 지난달 20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하이키 멤버들은 신곡 ‘건물 사이에~’를 처음 들은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 멤버 휘서는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붉은 장미가 피어난 모습을 상상하며 들었다”며 “고개를 들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대목에서 듣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시멘트 벽면에 기어이 뿌리 내린 꽃의 심정을 노랫말로 풀어쓴 이는 밴드 데이식스 멤버 영케이. 하이키는 소속사 그랜드라인그룹(GLG)을 통해 ‘건물 사이에~’를 받았다고 한다. 영케이가 군 복무 중이라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멤버들은 “영케이 선배님이 작사한 곡을 부를 수 있다니 무척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감성적인 멜로디는 데이식스·2PM·원더걸스 등과 호흡을 맞춘 홍지상 작곡가의 솜씨다. 두 ‘히트 메이커’의 만남에 해외 팬들은 열광했다. GLG에 따르면 ‘건물 사이에~’는 발매 당일 한터차트 실시간 순위 5위, 멜론 최신 차트 32위에 올랐다.
하이키는 이 곡 무대에서 한 송이 장미가 된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표현한 퍼포먼스”(서이) 덕분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장미는 미의 상징이라기보단 야생화에 가깝다. 막내이자 메인 댄서인 옐은 “악착같이 살잖아”라는 가사에 맞춰 힘차게 발차기한다. 손질되거나 꺾이는 대신 있는 그대로 피어나려는 장미의 의지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옐은 “노랫말을 생각하며 춤을 추니 무대에서 울컥 감정이 올라온다”고 털어놨다.
하이키는 건강한 마음을 주제로 ‘건물 사이에~’ 등 미니 1집을 꾸렸다. 하루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란 주문을 담은 노래 ‘링 더 알람’(Ring the Alarm)을 시작으로, 태국 가수 파차야가 피처링한 ‘크라운 주얼’(Crown Jewel),그룹 우주소녀 멤버 엑시가 프로듀싱한 ‘드림 트립’(Dream Trip) 등을 담아 ‘존버’하는 청년들을 위로한다.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 ‘유 아 마이 키’(You Are My Key)는 하이키 네 멤버가 함께 가사를 썼다.
음반은 멤버들에게도 안식처가 됐다. 리이나는 “컴백을 준비하면서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던 날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멤버들은 한 팀으로 모인 지 1년도 안 돼 데뷔했다. 수 년 동안 합숙하며 호흡을 맞추는 다른 아이돌 그룹보다 숙성 기간이 짧은 셈이다. 데뷔 후엔 멤버였던 시탈라가 탈퇴하는 아픔도 겪었다. 리이나는 “‘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라는 ‘건물 사이에~’ 가사가 저희를 기다려준 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지난해 6월 하이키에 합류한 휘서는 “멤버들이 워낙 잘 챙겨줘서 팀에 적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던 멤버들이 하이키라는 이름으로 뭉친 지도 어느덧 1년. 이제 멤버들은 서로에게 “내가 약해질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옐)가 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데뷔한 탓에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던 팬들도 음악방송과 팬사인회에서 만나고 있다. 서이는 “데뷔 후 처음 KBS2 ‘뮤직뱅크’에 출연한 날이 기억난다. 처음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기분이었다”면서 “방송국에 들어가는 길에 내 본명을 부르는 팬의 목소리를 듣고 ‘내게도 팬이 생기는구나.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힘이 났다”고 말했다.
“어떤 아픔이라도 딛고 일어날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어요. 우리는 상처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미니 1집에 담았죠. 건강한 마음을 가지려면 단단한 코어(중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믿고 스스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흔들릴 테니까요. 1년 후에 오늘을 돌아보면서 ‘역시 2년 차 활동은 다르군’이라며 저희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음악방송 1위, 나아가 단독 콘서트도 이루고 싶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