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빌라왕’ 사건 등 전세 사기 피해 임차인들을 위해 최장 4년까지 대출을 연장해준다. 전세 피해자를 위해 1억6천만원까지 최저 연 1.0% 금리로 빌려주는 대출 상품의 취급 은행도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은 전세대출 중 주택도시보증(HUG) 상품에 대해 임대인(집주인)이 사망했을 경우 관련 서류를 제출받아 전세자금대출 특약 보증을 4년 이내에서 보증신청인이 신청하는 기간만큼 연장해주고 있다. 지난해 빌라왕 사망이 잇따르며 피해자 구제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그간 임대인 사망 시 전세 계약이 유효한지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해 은행마다 전세자금 대출 연장 업무지침이 달랐는데 HUG가 보증을 최장 4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은행들도 보증기간 연장에 맞춰 대출 만기 연장이 가능해졌다.
HUG 보증 전세대출을 취급하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등은 이미 최장 4년까지 횟수 제한 없이 분할연장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전산 개발을 마치는 대로 2월 중 시행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규모에서 HUG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말 기준 93%에 달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 등 보증상품의 경우 임대인 사망 시 관련 서류를 받아 6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은행권은 당국과 전세 보증기관들의 전세 사기 피해자 구제 방향에 맞춰 대출기한 연장, 전세대출 피해자 이자·상환 유예 등 피해자지원 방안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계획이다.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의 취급 은행도 확대된다. 지난 9일 우리은행이 해당 상품을 단독 출시했는데 2월 중 주택도시기금 수탁 은행인 국민·신한·농협·기업은행도 출시할 예정이다.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은 전세 피해를 본 피해자를 대상으로 1억6000만원까지 연 1%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전세피해 주택의 보증금이 5억원 이하이고, 보증금의 30% 이상을 피해를 본 무주택 세대주가 대상이며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 순자산가액 5억600만원 이하 기준이 있다. 금리는 임차보증금과 연 소득에 따라 연 1.2%∼2.1%이며 자녀 수에 따른 우대금리를 받으면 최저 연 1.0%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은 국토교통부의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과 우리은행 간 전용망을 연계해 대출 심사, 실행 과정에서 확정일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사업도 시행할 예정이다.이는 일부 집주인들이 주담대 저당권 등기와 세입자 확정일자 법적 효력의 시차를 악용해 세입자 몰래 전세 계약 직후 담보대출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주담대 저당권 설정 등기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지만 세입자 확정일자의 법적 효력은 다음날 발생해 대출이 나가면 저당권이 선순위채권이 돼 세입자의 보증금이 뒤로 밀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피해자 구제 방안일 뿐으로 전문가들은 사전적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사후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지금 같이 고금리로 인해 갭 투자자들이 이자에 허덕일 때는 이자 후불제, 이자 유예제도를 통해 지금 내야할 이자를 3~4년 뒤에 원금과 포함해서 내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전세 제도가 우리나라에 있는 한 한정된 대안과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전세자금 대출이 서민 대출임을 강조하다 보니 시장에 너무 많은 자본이 풀려져 있다. 상환 능력을 고려와 전세금 관련 비율을 축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