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국내 주식시장은 주주가치 제고 보다는 기존 지배주주 이익을 대변해 왔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국내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러한 반작용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물론 한계도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주주 중심인 국내 상장기업의 구조적 한계, 높은 상속세, 상법개정안 없이는 주주가치 환원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가치 제고 보다는 주가 상승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한계,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분석해 다뤄보도록 한다.
오너일가 전횡 사모펀드가 수술한다 [행동주의 펀드 전성시대④]
“자녀 승계를 위한 후진적 기업문화와 이사회 독립 없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회복은 요원하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강성부 대표가 자신의 저서 ‘좋은기업 나쁜주식, 이상한 대주주’를 통해 이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은 분단과 전쟁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실제 후진적인 기업 문화와 일반주주를 경시하는 경영 풍토가 더 영향을 미쳤다.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도 제 역할을 하기 보다는 지배주주의 입맛에 맞춰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사모펀드는 BYC,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을 겨냥해 주주가치를 제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두 기업은 성격은 다르지만 지배주주 이익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BYC는 △오너 일가 승계 △에스엠은 이수만 개인의 사적 편취와 독단적 경영 방식이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가치 대비 과도한 저평가”…행동주의 펀드 반란 배경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는 BYC과 에스엠을 겨냥해 “기업 가치 대비 과도한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 중 하나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 2021년 말부터 속옷 브랜드 기업으로 잘 알려진 BYC를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주주(지분 8.13%)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는 보유자산 대비 크게 저평가된 기업”이라며 “이는 △투자재원의 비효율적 배치 △특수 관계자(오너 일가) 간 내부거래에 관한 부당성 의혹 △시장과 커뮤니케이션 부재 등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BYC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65배 수준이다. 이는 자산가치(기업의 장부가액) 대비 시가총액이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도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BYC의 투자부동산 장부금액은 4711억8270만원, 자기자본(자본총계)은 5101억811만원이다. 매출도 3분기 누적 기준 1211억7422만원이다. 반면 시가총액은 2308억원에 불과하다.
이수만 회장의 에스엠도 동종 업종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시장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에스엠의 매출은 8159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박진영이 최대주주로 있는 JYP엔터테인먼트(JYP Ent.)의 매출은 3391억원으로 에스엠의 절반도 못 미친다. 하지만 시가총액에서 에스엠은 2조1450억(2월 7일 기준)으로 JYP Ent.(2조5487억원)에 비해 적다. 그만큼 엔터 상장사 가운데 에스엠의 기업가치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지배주주나 오너일가 이익 편중된 것이 주요 원인”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는 BYC와 에스엠의 저평가 배경에 “지배주주 이익에 편승한 낡은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BYC의 저평가 배경에는 △오너 일가들로 구성된 내부자 거래(일감몰아주기) △오너 3세의 승계 문제 등이 거론된다. 트러스트자산운용은 BYC를 겨냥해 오너3세의 지분 승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현재 BYC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오너 일가의 지분으로 대부분 이뤄졌다. BYC의 최대주주인 신한에디피스(18,43%)는 한석범 BYC 사장의 아들 한승우 BYC 상무가 58.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한석범(16.33%), 한석범 BYC 사장의 부인 장은숙(13.33%), 한석범 사장의 장녀인 한지원, 차녀 한서원 씨가 각각 6% 지분을 갖고 있다. BYC 2대 주주인 한승홀딩스(10.55%)는 한승우 상무가 100% 지분을 소유한 상태다.
때문에 계열사 매출도 내부거래 비중이 크다.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불거지는 배경도 그 때문이다. BYC의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PT.KYDO’를 제외한 내부 거래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제원기업이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BYC는 제원기업을 통해 22억3329만원의 매출을 냈고, 33억54,06만원의 비용을 소비했다. 제원기업은 장녀 한지원 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최대주주인 신한에디피스도 내부거래에 자유롭지 못하다. 신한에디피스의 지난 2021년 말(감사보고서 기준) 전체 매출(61억4764만원) 대비 특수관계자(내부 거래)를 통한 매출 비중은 30% 수준(19억6893만원)이다. 이 가운데 내부 거래 비중이 가장 큰 곳은 한석범 사장의 100% 지분 보유 회사(부동산 시행사)인 신한방(19억3061억원)이다. 이를 두고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 오너 일가가 내부거래를 통해 승계자금을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에스엠도 한동안 ‘일감몰아주기’ 의혹으로 진통을 겪었다. 이수만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라이크기획이 바로 그 논란의 대상이다. 이수만 회장은 지난 2010년 에스엠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뒤로는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프로듀싱 명목으로 해마다 200억원 이상을 받았다. 에스엠은 지난해 3분기에도 라이크기획에 내부거래 비용으로 180억8690만원을 사용했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꾸준히 에스엠 이사회를 압박했다.
절반의 성공…변수 여전히 남아
행동주의 펀드의 이 같은 활동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 오너 일가의 사적 편취를 문제삼아 이 기업의 이사회 의사록 열람을 법원에 허가받았다. BYC도 지난해 12월 19일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해 계열회사 내부거래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스엠 지분을 보유한 얼라인파트너스도 1년이 넘는 주주캠페인을 통해 △이사회 감사 선임 △라이크기획 프로듀싱 조기종료 △멀티프로듀싱 시스템 도입(SM 3.0 시대) △이수만 회장의 실질적 퇴진 등을 이뤄냈다. 최근 에스엠은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시한 12가지 지배구조 개선방안도 수용했다.
다만 아직 ‘절반의 성공’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BYC의 경우 1년간 주주캠페인에도 불구하고, 1년 간 주가는 마이너스(-) 19.78%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 보다 승계를 우선시하는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거의 없거나 IR(기업설명회)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익 편취가 사실이라고 해도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 현 행법상 대규모기업집단(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내부거래만 규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BYC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총 자산은 6657억3823만원 수준이다.
에스엠은 최근 이수만 회장과 경영진들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또한 카카오가 ‘흑기사’로 등장하면서 2대주주로 등극했다. 에스엠은 지난 7일 공시를 통해 “카카오가 SM의 지분 9.05%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카카오는 에스엠의 유상증자 방식의 신주발행과 전환사채를 통해 이 같은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에스엠은 이수만 회장이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수만 측은 “상법과 정관에 위반되는 위법한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또한 일부 관계사 지분 구조를 고려할 때 이수만의 영향력은 아직 유효한 상태다. 에스엠의 관계사 가운데 내부 거래 비중이 가장 큰 에스엠브랜드마케팅(SMBM)은 에스엠(46.16%)과 이수만(41.73%) 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아. 에스엠이 SMBM을 통한 내부 거래 매출은 263억8533만원으로 전체(675억6943만원) 39%를 차지한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